박영수의 문화답사

 

“무릇 시의 근본은 군신, 부부의 떳떳한 도리를 밝히는데 있으며 더러는 그 무거운 뜻을 펴기도 하고, 더러는 그 원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펴고자 하는 데 있다. 그 다음으로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항상 힘 없는 사람을 구원해 주고 재산 없는 사람을 구제해 주고자 마음이 흔들리고 가슴 아파서 차마 그냥 두지 못하는 그런 간절한 뜻을 항상 가져야 바야흐로 시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이해에만 연연하면 그 시는 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글은 다산 선생이 유배기간 중에 두 아들에게 띄워 보낸 편지 내용이다.

혼자 웃다獨笑
곡식 가진 이는 먹을 식구 없는데/ 자식 많은 이는 굶주려 걱정이다./ 고관은 영락없이 바보인데도/ 영재는 재능 써먹을 자리가 없다./ 두루 두루 복을 갖춘 집 이렇게 드물고/ 극성하면 대개 쇠락의 길을 밟는다./ 아비가 검소하면 자식은 방탕하고/ 아내가 똑똑하면 남편은 어리석다./ 달이 차면 구름이 자주 끼고/ 꽃이 피면 바람이 망쳐놓는다./ 세상사 모두가 이런 것을/ 혼자 웃는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치마 폭에 쓴 詩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도 글씨 치마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1813년 정약용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전남 강진 땅에 귀양가 있었다. 강진의 만덕산 옆에 조그만 초가집을 짓고 살면서 오로지 책 읽고 글 쓰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벌써 귀양살이도 13년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서울 집에서 편지와 옷가지를 부쳐 왔다. 열어 보니 가족들 모두 편안히 잘 있다는 안부 편지와 함께 낡아서 못 입게 된 치마 몇 벌이 있었다. 아내가 시집오던 날 입었던 붉은색 활옷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붉은빛은 이미 다 바래 버리고, 노란색도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것이었다.
아내가 왜 이 낡은 치마를 보냈을까? 정약용은 이렇게 생각하다가 가위를 가져와 빛바랜 치마를 네모나게 잘랐다. 그것으로 공책을 만들었다. 거기에 먼저 두 아들에게 주는 훈계의 말을 적었다. 죄인이 돼 멀리까지 귀양와 사는 동안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담아 열심히 공부하고 바른 사람이 되라는 부탁을 함께 곁들였다. 어머니가 시집오시던 날 입었던 빛바랜 치마 위에 아버지가 써주신 훈계의 말씀을 받아 들었을 때 자식들의 가슴은 얼마나 뭉클했을까? 아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을 적고 나서도 치마 천이 조금 남았다. 그래서 다시 시집간 딸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딸을 위해 그려준 그림과 시는 지금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림을 보면 먼저 위쪽에 매화가지를 그렸다. 가지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었다. 봄날이 온 것이다. 어디선가 날아온 꾀꼬리 두 마리가 정답게 매화가지 끝에 앉아 있다. 두 마리 꾀꼬리는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며 즐겁게 봄날을 노래한다. 그 아래에는 이렇게 시를 써 놓았다.

펄펄 나는 저 새가/ 우리 집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즐거이 놀려고 찾아 왔다./ 여기에 올라 깃들여 지내며/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열매도 많이 달리겠네

한 쌍의 꾀꼬리가 매화 향기를 찾아 내 집 마당으로 날아들었다. 그 춥던 겨울이 다 끝난 것이다. 새들은 꽃 향기에 취해 나뭇가지를 떠날 줄 모른다. 즐거운 노래가 그치지 않는다. 겨우내 쓸쓸하던 마당이 갑자기 환하다.
시인은 새들에게 말을 건넨다 “여기가 그렇게 좋으니? 나도 너희들이 좋구나.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자꾸나. 네 짝과 더불어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 보렴. 매화꽃이 이렇게 활짝 피었으니, 조금 있으면 매실이 주렁주렁 매달리겠지. 그때는 함께 매실을 따 먹으며 재미있게 놀아보자꾸나”
새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봄빛만 바라보고 있다. 이 시의 원문은 한 구절이 다섯 글자도 아니고 일곱 글자도 아닌 네 글자로 된 특이한 형식이다. 아주 옛날 고대 중국의 노래 형식이다. 공자가 엮은 ‘시경’이란 옛 시집 속에 실려 있는 시들이 대부분 이런 네 글자 형식으로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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