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폐암선고를 받은 날도 부장은
실적을 추궁 당하며 서 있을 때
걱정스런 얼굴로 달빛이 기웃거렸다
판매원은 진상을 떠는 고객 앞에서
떨어지는 입꼬리를 연신 주워 귀에 걸었고
상담원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조롱과 언어폭력에도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펑펑 눈이 오는 저녁 조랑말처럼
이곳저곳 친구들과 뛰어다니고 싶다던
19살 산업훈련생 머리 위로 지붕이 무너졌다
청소년 야간노동 금지 조항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법전 어딘가에서 헛물만 켜고 있었다

부실한 골조에 바람 숭숭들어 삐걱이는 지붕이 문제인가
암세포가 한숨소리 도마 위에 올려놓고
또각또각 칼질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고객이 갑이 상사가 이마에 내천자만 그려도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 내려야 하는 일터

치열하게 살아남아 을이 된 타인들
밥그릇을 앞에 두고 꼬챙이로 서로를 고문하는데
구경꾼들 계속 방관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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