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늦은 봄, 혼자 거실에서 보는 영화의 맛이 눈에 달다.   
인생이란 바다에 덧댄 표류기, ‘라이프 오브 파이’는 숨겨놓은 상징을 찾아보는 재미가 엄청나다. 상상하고 분석하는 재미까지 끼어든다.
구명보트에서의 200여 일을 표류한 생존자의 경험담을 듣고자 하는 기자에게 영화 속 주인공은 두 가지로 답한다. 상징으로 설정한 서사를 빌려 서정을 말했다는 것을 암시하며 기자는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자리를 뜬다. 그리고 감상자는 확인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애써 설명하지 않는 게 매력이다. 영적 메시지가 강한 삶의 반전을 다룬 영화지만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표류기의 영화로도 볼거리가 좋다. 
‘피신 몰리토 파텔’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주인공은 학창시절에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았다. 피신과 발음이 비슷한 피싱이 영어로 ‘오줌싸개’란 뜻을 가졌으며 소개만 하면 오줌싸개라고 놀려서 그는 원주율 파이, 3.14159265358…로 이어지는 뒷숫자까지 칠판에 나열하며 자신을 ‘학교의 전설, 파이’로 이미지를 바꿔 놓는다. 소년은 일찍 영에 눈을 뜨며 성장하는 동안 다양한 종교에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진다. 그때 동물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동물들을 팔고 이민을 간다고 해 그 가족은 동물과 한 배를 타고 멀리 캐나다로 항해하던 중 난파되면서 구명보트 위의 생활이 이어진다. 
다리를 다친 얼룩말이 가장 먼저 보트 위로 던져지고 이어 하이에나가 오르고, 바나나 뭉치를 타고 표류하던 오랑우탄이 보트로 올라온다. 그리고 주인공 파이가 탔다.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이 동물로 상징됐으며 한 배를 탄 인생 조난자들이다. 바나나를 타고 온 오랑우탄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어머니며 유일한 여자다. 아울러 불교신자 선원이며 다친 얼룩말 다음으로 약자이기도 하다. 죽은 동물까지 먹는 주방장의 상징인 하이에나는 며칠 굶고 나자 제비뽑기를 해서 먹잇감으로 삼자고 제의하다가 동의를 얻기도 전에 얼룩말을 문다. 오랑우탄이 그러면 못쓴다고 도덕적 발언을 하자 그만 오랑우탄도 물어 죽였다. 육식동물이 두 마리의 채식동물을 물어 죽인 셈이다. 그것을 보자 가려진 장막 안에 숨어있던 호랑이가 나타나 하이에나를 물어  죽였다. 결국 아프고 약한 것부터 죽음을 당하고 힘이 더 센 놈이 그 놈을 죽였다. 힘의 권력자 호랑이는 숨어있다가 나타났다.
그 동물들 중 파이만 사람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그는 죽은 자의 인생을 미끼삼아 삶의 먹이를 낚아 본능적 욕구를 조절하며 한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버틴다. 그 둘은 본능적 욕구와 영적 지혜를 가진 인간의 양면성이다. 보트의 것들을 떼어다 뗏목을 만들어 시도 때도 없이 으르렁거리는 호랑이에게서 거리를 둔다. 뗏묵이 지혜로 생명을 유지하는 교회로 보인다. 배 안에 준비된 항해지침서는 경전으로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말라는 내용은 종교적 가르침으로 들린다. 그것을 마련해둔 아버지가 신으로, 파이는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상징됐다. 위기에 가장 힘이 돼주는 단어, ‘희망’이 빛난다. 잡힌 고기를 신이 허락한 음식이라고 그 와중에 감사를 한다. 
지쳤을 때 자칫하면 살 수 없는 섬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파이가 만난 섬은  착각의 섬, 떠있는 섬이다. 파이의 분별력으로 일시적 휴식은 취하지만 떠나기로 하고 배에 올랐는데 호랑이도 따라와서 호랑이가 파이의 무릎 위에 고개를 떨군다. 이미 생존할 만큼만 먹여주는데 길들어서 파이에게 기대게 되는 반전, 아름답다. 저들은 떼레야 뗄 수 없는 자기 안의 양면성인 짝이었다.
사람 안의 본능적 욕구는 극한 상황에서 날뛰지만 영적 잠재력 또한 위기에 힘을 발한다. 이 둘은 친구가 될 수는 없지만 어느 힘을 주도적으로 사용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달래가며 공존하는 사이다. 그들이 육지에 도착하자 배고픈 호랑이는 먹이의 소굴, 기억의 밀림으로 들어가며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면 그 이전까지의 상황은 무의식으로 저장되고 그 기억의 숲에는 호랑이가 산다. 영화의 끝처럼.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이나 했을까라고 주인공이 묻는데 크고 작은 인생의 반전을 경험한 나는 공감이 증폭된다. 사람들의 무의식에 잠재된 호랑이를 발견한 날, 나는 환하게 웃어본다. 내 기억 안에서 활동하는 ‘호랑이’에게 요즈음 나도 먹이를 주며 길들이고 있기에 희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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