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신분불안으로 손해 보는 아파트

심층취재 이경석l승인2016.05.25 18:00:18l979호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가장 커다란 고민-이직
관리사무소장 A씨. 그는 올해 1월 현 근무지에 부임했다. 이제 겨우 5개월 남짓 근무했지만 심각하게 이직을 고민 중이다.
5,000가구가 넘는 규모를 자랑하는 이 아파트는 각종 민원과 고소고발이 난무해, 시 차원을 넘어 광역 도청에서도 골머리를 썩을 정도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관리사무소에 찾아와 민원을 제기하는 입주민만 하루 10여 명. 각종 공사 관련 문서 열람을 요구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층간소음과 주차문제에 대해 따지는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법원과 경찰, 지자체 등에 접수된 고소고발 및 진정 등은 수 십 건에 이른다. 입주민과 입주민 간, 입주민과 입대의 간, 전임 입대의와 후임 입대의 간, 입주민과 관리사무소 간 등의 문제가 얽히고설켜 ‘솔로몬이 와도 해결할 수 없는 단지’라는 별명까지 달고 있다.
일단 작은 공사라도 하나 시작되면 공사금액이 왜 다른 단지와 다른지,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입대의나 힘센 입주민의 입김이 개입된 건 아닌지, 사업자 선정지침에 하나라도 누락된 부분은 없는지 등을 꼬치꼬치 따져 묻는 통에 답하고 설명하다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정작 본연의 업무는 뒷전이 된다.
소장 평균 재임기간은 불과 6개월. 월급도 많고 규모가 커서 도전했던 많은 베테랑 소장들이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보따리를 싸야 했다. 목소리 큰 입주민들의 교체 요구 때문이었다. 소장이 아무리 중립을 지키며 업무를 수행하려 해도 전임자는 개혁파에 의해 쫓겨나고, 후임자는 보수파에 의해 밀려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A소장은 “악성민원이 많다는 이유로 지난해 실시된 특별감사에서 전임자가 적법한 절차에 따른 서류들을 제출해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지적을 받았다”며 “민원이 제기되면 무조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감사관들의 태도에도 객관성이 결여된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 직원에게 잦은 소장 교체에 대해 묻자 “몇 년 동안 관리업무의 수장이 계속 바뀌면서 300명 가까이 되는 관리직원 및 경비원, 미화원과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떠나는 일이 계속돼 왔다”며 “이런 지휘공백 상태에서 무슨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겠느냐”고 되묻는다.

#갈수록 악화되는 고용불안
관리종사자들의 고용 불안정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관리업무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소장의 신분불안은 더욱 심각해 큰 손실이 되고 있다.
한국주택관리연구원이 지난 2014년 실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관리직원의 계약기간은 평균 12개월이며, 계약기간이 12개월 이하인 소장이 약 90%, 24개월에서 36개월인 경우는 7.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2년마다 짐을 싸며, 빈번한 교체로 업무의 연속성이 상실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정형철 수석연구원(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은 “고용승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위탁관리회사나 입대의의 권고사직과 부당해고 등으로 인한 잦은 이직은 주택관리사의 고용 불안정을 더욱 촉진한다”며 “이는 당사자와 아파트 단지 모두에게 손해”라고 말했다.
정 박사의 지적처럼 대부분이 업무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로 인해 “업무를 처리할 때마다 주민 대표와 위탁사 실세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언론도 심각하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최창식 회장은 “선정적 언론들의 계속되는 왜곡 과장보도로 인해 현장 종사자들이 한없이 위축돼버린 상황”이라며 “진정으로 비리를 없애고자 한다면 관리사무소장이 외부 입김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관리’ 본연의 위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지적하고 “근본적으로 신분보장이 최우선 확립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요즘 언론은 아파트 관련 보도를 너무 쉽게 다루고 있다.
사소한 업무누락을 침소봉대해 ‘5곳 중 1곳은 비리아파트’라고 터무니없이 국민을 오도하지만, 대부분의 관리사무소는 커피믹스 한 통 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한다. 어떤 소장은 힘들게 작업한 날이면 용돈을 털어 관리직원과 경비원, 미화원에게 간식을 사 주기도 한다.
한쪽 눈을 감은 저널리즘이 공동주택을 한층 더 혼란의 도가니로 밀어 넣고 있다. 입주민 불신과 직원 이직을 부채질해 서로를 상처 입게 만든다. 관리현장에선 “우리가 힘 없고 나약한 존재라서 편하게 짓밟는 것 아니냐”며 울분을 표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만난 한 관리소장은 “관리 종사자들이 더 이상 매도당하지 않고, 안정된 상태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이경석  kslee@hapt.co.kr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경석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한국아파트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2-727)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3동 222-8 코오롱빌란트2차 705호 (주)한국아파트신문
대표전화 : (02)884-5445  |  팩스 : (02)884-5995  |  등록번호 : 공보 다 04289  |  발행인 : 황용순  |  편집인 : 이경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석
Copyright © 2002~2017 (주)한국아파트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