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의식주는 인간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요소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 따라 사고와 행동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주 공간에 대한 고민은 입고 먹는 것보다 후순위로 인식해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집을 선택할 때 ‘사람’은 고려 대상에서 밀려나기 일쑤였다. 역세권인지, 학군은 어떤지, 지은 지 얼마나 됐는지, 재건축은 가능한 곳인지 등등 주거공간이 아닌 자산가치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다. 정서적 안정감이나 건강상 이유로 도심의 빽빽한 아파트 숲을 벗어나 교외로 나가거나 단독주택을 지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예컨대 공간이 사람의 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의 연구, 분석을 통해 사람을 위한 건축과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신경건축학’이 바로 그것이다.
1984년 미국 델라웨어대 지리학과 로저 율리히 교수는 펜실바니아주 교외의 한 요양병원에서 담낭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 46명을 관찰한 결과, 창을 통해 작은 숲이 내다보이는 병실에 있던 환자 23명이 담벼락만 보이는 병실에 있던 환자 23명보다 먼저 퇴원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물리적 공간이 환자의 치유 능력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최초의 연구 결과였다.
그후 2002년 8월, 미국건축가협회 존 에버하트 연구소장이 건축과 신경과학의 접점을 찾기 위해 합동 워크숍을 개최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공간과 사람’에 대한 융합연구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이어서 2003년 ‘신경건축학회’가 발족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는데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 에스터 스턴버그 박사와 MIT 뇌과학과 매슈 윌슨 교수가 2006년 10월,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셀’에 ‘신경과학과 건축:공통의 토대를 찾아’라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우리나라도 2011년 2월, 신경과학자와 건축가 등이 ‘신경건축학연구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또한 2014년 9월, 대한건축학회에서도 학회지 ‘건축’에 신경건축학을 특집으로 다루는 등 이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신경건축학계에서는 건축 구조나 풍경 구조에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거나 마음을 편안하게 함으로써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어빙 비더먼 교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아름다운 경치나 노을, 숲 같은 풍경을 볼 때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경로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특히 풍경에 색과 깊이, 움직임이 더해지면 더 많은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돼 사람들이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하여 신경건축학은 사람들이 밀집해 생활하는 병원, 학교, 사무공간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한편 신경건축학자들은 요즘 주목받고 있는 북유럽식 교육에도 공간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주목한다. 북유럽의 학교들은 공공건물을 집보다 편한 공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고 개방성을 강조함으로써 학생들이 협동심과 민주주의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경건축학’은 말 그대로 ‘신경과학(Neuroscience)’과 ‘건축학(Architecture)’을 합친 단어로 어떤 건축물이나 공간을 마주할 때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 같은 신경건축학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의 목적이 ‘행복’과 ‘힐링’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총 재고주택의 과반수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고 전 국민의 과반수가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언필칭 ‘아파트 공화국’의 실상은 어떠한가.
지난 반세기에 걸쳐 주택의 건설·공급에만 급급한 나머지 획일적인 대량생산 방식으로 찍어낸 듯한 우리의 전형적인 아파트 공간은 행복이나 힐링은 커녕 건축물의 하자와 각종 환경질환 유발로 몸살을 앓아왔다. 다행히 최근 신경건축학을 적용해 건설한 아파트 입주민들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기사가 종종 눈에 띈다.
이제 우리나라도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받아들여 주거 공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경제적 조건을 넘어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신경건축학은 건축학의 대안이나 보완이 아닌 ‘기본’이 되도록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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