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만남이 있고 이별이 있어 설렘이 있고 그리움이 있는 역은 사랑이다.
80리 바람 재 너머에도, 90리 구름 재 너머에도, 꽃잎을 띄운 눈물 역이 있고 눈물을 띄운 꽃잎 역이 있었다.
질퍽거리는 삶일지라도 그 역 앞에선 기암절벽에 매달린 선(禪)이니 도(道)도 속이 된다.
옷고름 풀은 햇살이 숨이 가쁘게 내려오고, 치마 단을 걷어 올린 남해의 바람이 숨가쁘게 올라오니 봄꽃들도 무척 바빠 미처 준비도 없이 낙동강의 저 맨 위쪽까지 유채가 노랗다.
봄 햇살에 더욱 늘어진 철로가 어디론지 가고 싶다고 발버둥을 쳐도 떠나지 못하는 역은, 관절이 안 좋은 할머니를 닮아 쉼표처럼 앉아 있다.
봄바람에 떠나고 싶어도 그것이 역이라고 떠나지 못하는 ‘이별의 삼랑진역’은 문희옥의 노래처럼 슬프다.
돌아온다 약속했지만 니캉 내캉 가슴을 치며 슬퍼하는 이별의 삼랑진역. 경부선과 경전선이 교체되며 손을 흔드는 역이 어디 삼랑진역 뿐이랴.
남진호의 ‘슬픈 정거장’이다.

차가운 비가 내리던 마지막 하루의 슬픈 정거장 /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픈 날 숨겨 웃게 해 너를/ 정말로 고마웠다고 잊을 수 없을 꺼라든 눈물의 마지막/ 시간이 지나면 아픈 이순간도 추억이 되기를 바래/ 내 마음 아파도 너와 함께한 오랜 시간을 기억해
쓸쓸한 힘든 어떤 날 네 얼굴이 생각나겠지/ 우울한 비가 내리면 오늘 이 거릴 떠올리겠지/ 돌아선 너의 뒷모습 떨리는 어깰 참아낸 눈물의 마지막/ 시간이 지나면 아픈 이 순간도 추억이 되기를 바래/ 내 마음 아파도 너와 함께한 오랜 시간을 기억해/ 슬픈 기억은 이젠 모두 안녕

협궤열차가 달리는 분천역과 승부역 사이에 있는 양원역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역이라 해도, 그 앞에서는 진선미(眞善美)를 들추면 아예 불경죄가 되리라.
기차가 지나가는 저 안쪽 마을을 보면 ‘사월이 오면 사월이 오며는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저 라일락 아래로 라일락 아래로’라고 사월의 노래를 부르며 제대로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짧은 인생을 살다간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라는 시가 또 생각나고,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이야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라고 시가 끝을 맺었지.
벌써 손을 흔들며 삼랑진의 무궁화호보다 먼저 떠나버린 꽃들이 있고, 떠난 자리가 너무 슬퍼 잎이 저토록 새파랗게 흔들거린다.
다음 정거장을 공손하게 안내하는 멘트도 없는 우리네 인생, 대곡산의 늦게 핀 산 벚꽃 하나 내 가슴 맨 아래쪽 종점역에다 내려 앉힌다. 
마지막 연인이 되어 떠날 수 없는 사랑이 되도록, 그가 앙탈을 부려도 나는 침묵을 준비하련다.
너와 나의 아픈 사연이 있어도 기차는 다니지 않고 때가 되면 꽃만 피우는 경화역처럼, 여기가 너와 나의 마지막 역이라고 그대에게도 말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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