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k-apt를 해부한다
기획 시리즈 <2>전문영역에 대한 비전문가의 평가

 

한국감정원이 관리 투명성 제고를 목적으로 시행한다던 ‘관리비 상태표시’에서 갖가지 모순이 발견되며 상태표시가 감정원 스스로 공동주택 관리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자충수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사실상 관리비 상태표시는 관리비의 높고 낮음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른 기준은 없다. 특정 비교군 내에서 관리비의 ‘양적 비교’만으로 평균과 상태등급 기준 값(유사 단지 중 관리비가 낮은 50% 단지의 평균 관리비)을 도출해 기준보다 관리비가 적은 단지에는 우수 표시(등급)를, 관리비가 많은 단지에는 점검필요 표시(등급)를 매기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 자체에 모순이 있다. 철저한 상대평가로 운영되다보니 가령 우수한 10개 단지를 모아놔도 점검필요 표시를 받는 단지가 나온다는 것. 반대로 비리가 의심되는 단지 10개를 비교한다 해도 그 중 우수 등급을 받는 단지가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로 인해 관리비를 많이 거두는 비교군에 포함되면 뜻밖에 우수 등급을 받을 수 있고 관리비를 적게 거두는 비교군에 포함되면 의지와 상관없이 점검필요를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일례로 지난해 국토교통부 최우수·우수관리 단지에 빛나는 아파트들도 ‘유의’, ‘점검필요’ 표시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토부 장관이 인증한 우수관리단지지만 감정원의 기준에는 미흡했다는 것인가.
올해 초 서울시는 ▲행정 ▲건축 ▲회계 ▲기술 ▲공동체 등 5개 분야 149개 항목을 평가하는 ‘아파트 관리품질 등급제’에 들어갔다. 올해는 1,500가구 이상 대규모 단지 96개를 평가해 3개 등급으로 나눈다.
서울시는 등급을 우수·기준통과·기준미달로 나눴지만 상위 30%를 우수, 하위 30%를 기준미달로 나누는 미숙함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관리비만을 뚝 떼어 평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근로자 처우, 공동체 활성화, 갈등 관리, 안전 및 유지 관리 같은 부분에 중점을 뒀다. 
상대평가가 아니니 아파트의 상황에 따라 과반수가 우수등급이 나올 가능성도 그 반대 상황이 나올 수도 있지만 무조건 등급을 나눠 기준 안에 아파트를 집어넣으려는 시도는 없다. 더욱이 우수, 기준통과 등급은 공개하고 기준미달 단지는 해당 단지에만 통보해 자체적 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다.
시는 단순 ‘등급’을 나누는 것보다 “제대로 된 관리품질 정보제공과 자체적 개선을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공동주택 관리에 대한 오랜 경험과 깊은 이해의 산물이다. 
등급표시에 대한 관리현장의 반발이 심해지자 감정원은 ‘관리비 상태는 개별 단지의 설비·부대시설 상태 및 지역상황 등 고유의 특성과 관리서비스의 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절대적인 의미는 아니다’라는 단서 문구를 시스템에 삽입했다.
입주민에게 관리비 부과·징수의 ‘적정성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시행했다던 관리비 상태표시가 뒤늦게 개별 단지 사정에 의해 절대적인건 아니라는 소명은 자가당착 또는 자기부정으로 보인다.
본지가 수차례 지적했듯 공동주택의 가치를 관리비를 기준으로 나누는 건 공동주택 관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입주민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단지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고 노령 경비원을 해고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안전망을 형성하고 이웃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 활동을 영위하는 것을 점검을 필요로 하는 행위로 치부하는 발상은 지극히 위험하다.
비용을 줄이겠다고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고 근로자를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며 좋은 등급을 받는 게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행위인지 반문하게 된다.
한 관리소장은 “한국감정원이 재산의 경제 가치를 판정해 가액으로 표시하는 업무에 너무 길들여져 공동주택 관리라는 인간의 삶과 관련한 부분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는 결정된다.
후한 말 조조는 희대의 명검 청공검을 자신이 아끼던 장수인 하후은에게 줬지만 청공검은 상산 조자룡의 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빛을 발했고 여포와 관우를 태우고 천하를 누비던 적토마는 주인을 잃고 마충에게 맡겨지자 먹이를 거부하다 죽었다.
좋은 도구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야 그 쓰임을 다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은 명실상부 국내 의무관리 공동주택의 모든 정보를 아우르는 종합시스템이다. 현재 관리비와 유지관리 이력, 입찰정보, 아파트 가격, 에너지 사용정보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장기수선충당금 적립요율기준까지 마련되면 이 시스템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운용하는 한국감정원의 공적 역할에 대한 책임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무모한 시도는 전문성 부족에서 온다. 공동주택 관리에 대한 이해와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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