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강원도의 힘을 받으러 아들네 가족과 동해안에서 2박 3일간 묵었다. 마치 텔레비전에서 만난 지중해안의 어느 나라에 여행온 것 같다.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날씨까지 덤으로 얻은 날이다.   
베란다 틀에 팔을 괴고 바로 앞의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는 파도로 숨을 쉰다. 들숨날숨, 쉼 없는 반복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포말을 일으키고 나가면서 가벼워진 것을 백사장에 남겨두고 간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하나의 작업노트를 봤다.
바다는 원하지 않아도 조개껍데기며 강에서 밀려온 쓰레기며 잡다한 물건들을 품고 살면서도 원경으로는 수평선을 만든다. 그것이 바다의 운명이고 매력이다. 바다의 속내를 거스리는 것은 더 깊은 바닷 속 땅에서 일어나고 자신의 역사 안에서 누적된 에너지들이 이동하고 부딪치면서 때로는 앓기도 하고 폭발도 일어난다. 그러한 바다의 속사정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은 내가 산 세월로 봐서 바다에 가깝게 왔다는 증거이리라.
잔잔한 파도는 일상의 심리적 호흡이고, 너울성 파도는 심리적 재채기일 것이며, 바닷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는 영혼의 변화일 것이다.
집에 돌아와 동해안의 백사장이 죽어간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 원인으로는 콘크리트 방패벽을 만들어 세운 것인데, 너울성 바닷물이 옹벽에 부딪치면 반사흐름이 커져서 모래를 쓸고 내려간다고 한다. 실제로 정동진역의 레일 바크의 철길이 무너져있다. 늘 어머니 집으로 드나들던 내 마음의 길이 무너진 요즈음의 이미지와 닮았다. 무섭게 반응한다.
나는 평생 어머니 인생의 너울성 파도를 닮은 감정에 지쳐서 방패벽을 쳤는데, 어느 순간 들이닥쳐 망가진 동해안의 백사장같이 돼버렸다. 쌓이고 쌓여서 돌덩이 같이 굳은 감정을 ‘가루내기 요법’으로 처리하던 중이었다.
바다와 대화를 나눈 날 밤, 나는 며느리와 밤이 깊도록 인생 이야기를 했다. 자연은 마음을 여는 열쇠가 돼줬었다. 모두가 잠든 사이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자식이나 부모형제와도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며느리와 나눴다. 귀 열어주고 마음을 열어주니 나는 그동안 내가 긍정모드로  칭찬하던 말들이 진실한 감정이 아니라 불안을 뿌리로 둔 것들 투성이었다는 것을 알아내고 실토했다. 놀라도 나중에 더 나이들어 놀라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다. 현재 가장 부끄러운 감정을 며느리에게 내보였더니 자신에게도 불안한 감정이 내재돼 있다고 말해줬다.
“어린 날부터 어머니에게는 늘 잘 보이고 싶어 조금도 어머니 마음이 나를 비켜가지 않도록 입의 혀로 살았거든…그러다가 20대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혼신을 쏟았지. 그게 습관이 돼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평생 살았지. 상황이 바뀌어도 어마어마하게 바뀌었는데…본의 아니게 효녀로 살았지…그러다가 어느 날 습관으로 빚어낸 나를 봤지. 불안의 뿌리를 보았단 말이지”
나중에 더 나이들어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드러낼 시간이 되면 그때 낡은 풀주머니에서 미어져 나오는 밥풀처럼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오는 게 별로 안 좋아 보여서 나는 내 정신 성할 때 무엇이건 비우기로 마음먹었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기를 소망하며 대화를 나눴다. 며늘 아이의 라이프 스토리도 다분히 나를 닮아있는 인생후배다. 밤에 문자를 보냈다.
“여러모로 좋은 여행이었네. 건강해라. 여행의 맛을 잊지 않을 게…너도 소중하고 아름다워. 귀를 여는게 아니라 마음을 열었잖아. 세상이 멀리 두고 싶고 약간씩 거부감을 가지는 시어머니란 어른에게 다가와 줘서 고마워. 이렇게 조촐한 사람에게….”
“…기억에 못 담고 흘러가는 것도 안타깝고 혼자 듣기가 아쉬워요. 현채(딸) 키울 때 너무너무 필요한 지혜예요.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바라는 게 없을 때는 속을 보여줄 수가 있다. 하늘로 갈 때 날개를 달고 싶은 열망, 자전에세이를 입으로 쓴 밤이다. 바다는 자장가를 불러주고 나는 하얀침대이불 속에서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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