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일기 77

 

 

입대의 최 병 용 회장
경기 청평 삼성쉐르빌

아파트에 살다보면 층간소음문제로 늘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나 아내는 웬만하면 참고 이해하고 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우리 집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 달 전 꼬마가 있는 집이 위층으로 이사 오면서 우리도 층간소음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것이다. 위층 꼬마가 거의 매일 “콩콩콩” 뛰어 다니는데 낮이나 저녁에는 그나마 참을 만한데 밤 11시가 넘어서 “콩콩콩” 뛰어 다닐 때는 정말 화가 났다.
우리는 둘 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 편이라 11시가 넘으면 자야 하는데 위층의 소음 때문에 잠을 일찍 못잔 다음 날에는 일어나면서 피곤 탓인지 짜증이 났다.
“아! 도대체 아래 집을 생각하는 거야? 안하는 거야? 아무리 어린아이지만 좀 심한데!”
“여보, 우리가 한 번도 말을 안 하니 전혀 조심을 안 하는 것 같은데 한번 올라가서 얘기해야 하는 거 아냐?”
“조금만 더 참아 보자고, 내가 엘리베이터서 보니 한 7살쯤 되는 남자아이던데… 한창 뛰어놀 나이니 웬만하면 참아 보자고”
며칠만 더 참기로 하고 지내고 있는데 며칠 후 정말 참지 못할 소음이 위층에서 들려왔다. 아이가 뛰는 소리도 아닌 무슨 톱니바퀴 달린 듯한 장난감을 굴리는지 “드르륵, 드르륵”하면서 여기서 저기로 계속 왔다 갔다 하는데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아내와 나는 ‘그래, 조금 있으면 그치겠지. 10분만 참아보자’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참았다. 그러나 웬걸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 소리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드디어 우리 둘 다 폭발을 하고 말았다.
“아! 도대체 아래 집을 뭐로 보고 이러는 거야? 오늘은 내가 정말 못 참겠다”고 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내는 그 상황에서도 “그래도 가서 언성 높이지 말고 차분하게 잘 얘기해요. 큰 싸움 벌이지 말고”라는 당부를 했다. 흥분을 최대한 억누르며 위층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네, 아래 집입니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네, 잠깐만요”
잠시 후 아이의 엄마가 나왔고 난 최대한 흥분을 삭이며 침착한 어조로 얘기를 했다.
“우리 부부는 새벽에 출근하는데 위집 꼬마 때문에 일찍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9시 이후는 뛰지 못하도록 애를 단속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동안 한마디도 안하고 참았는데 정말 오늘은 못 참겠네요. 지금 나는 소리는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네?”
“어머, 죄송해요. 오늘 우리 집에 집들이 한다고 손님들이 많이 와서요. 조용히 시킬게요”
“저녁에 애가 뛰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든지 소음방지판을 바닥에 깔든지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다 잠시 후 위집 아이엄마와 시선이 제대로 마주쳤다.
‘어!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이네...어디서 봤지?’라고 생각을 하며 뒤돌아서는데 아이엄마도 ‘어!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인데…’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뭐래? 뭐래? 따끔하게 얘기를 했어? 다음부턴 조심한다고 하지?”라고 묻는데 그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곤 내 방으로 들어와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누굴까? 어디서 봤지?’ 그렇게 한참을 오랜 기억을 떠올리다 결국 생각이 났다. 세상에, 세상에… 20여 년 전 총각시절 6개월 정도 사귀다 크게 싸우고 헤어진 그녀, 시연이가 분명했다. 몇 푼 되지는 않지만 내가 돈까지 빌리고 갚지 않았던 기억까지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쪼잔한 남자, 나쁜 남자 등등 시연이가 내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까지 생각이 났다.
‘아!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지만 어찌 이렇게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또 다시 마주치면 아는 척 할 수도 없고,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시연이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게 아니라면 이 밤에 분명히 나를 기억해냈을 텐데….
요즘은 승강기에서 만날까봐 노이로제에 걸려 산다. 위에서 승강기가 내려오는 소리가 나면 승강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서 출근하는 일이 많아졌다.
“여보, 왜 안타?”
“응, 나 요즘 살쪄서 운동 좀 하려고, 당신 혼자 타고 가”
시연이를 마주치지 않으려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아내를 설득시킬 마땅한 명분도 없다.
‘아! 신이여 어찌 제게 이런 가혹한 만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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