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제26주년 ‘주택관리사의 날’과 ‘한국아파트신문’ 창간 2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시국이 다소 어수선하지만 그럴수록 기념일은 뜻있고 값지게 보내야 한다. 이제 돌이켜보면 역사 속의 이날은 환희와 찬사보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조렸던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특히 매년 시험으로 인한 자격사의 과다배출로 근무환경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는 터에 시도 때도 없이 불거져 나오는 아파트 비리 보도는 일할 의욕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그렇다면 공법에 의거 공공이 정한 규정에 따라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전문관리 기법으로 주택의 수명연장 및 입주민의 권익보호, 더 나아가 삶의 질 제고와 국력의 누수·낭비를 방지하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의 중차대한 공공·공익적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공인 전문관리 자격사들이 왜 이토록 모진 시련과 고초를 겪어야 하는가.
여기에는 오랜 유교 전통의 봉건잔재, 군사문화, 천민자본주의를 비롯해 사후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부족, 전문관리에 대한 철학의 부재, 법령과 제도의 미비, 정부의 정책의지 결여 등등 원천적인 하자와 태생적인 한계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입주민의 ‘잘못된 주인의식’과 ‘비뚤어진 권리행사’ 그리고 무늬만 ‘위탁관리제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다. 그렇다고 해서 건전한 관리풍토 조성을 위해 ‘인간 면허증’이나 ‘입주 자격증’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위탁관리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기도 쉽지 않으니 더욱 갑갑하다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 시대 민간부분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권위 있는 전문직업인으로 대개 의사나 변호사를 꼽는다. 먼저 의사의 경우를 보면 고대 샤머니즘을 비롯해 마법사, 주술사 등이 의술을 다루기도 했는데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환자가 귀족이나 왕족일 경우 목숨을 담보해야 할 때가 많았다. 유학(儒學)이 모든 학문의 으뜸이던 조선시대, 의술은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잡학(雜學)으로 분류돼 의원의 신분은 양반과 평민 사이인 중인(中人)에 불과했다.
다음, 변호사의 경우 원시 씨족, 부족사회에서는 촌장이나 마을 원로 등이 율사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조선조에 이르러 율관(법조인)은 의관(의원)과 마찬가지로 중인 신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날 ‘의사와 변호사는 나라에서 내놓은 도둑놈’이라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의 통역관(외교관), 음양관(과학자), 산원(회계사), 화원(화가), 악원(음악인) 등은 모두가 중인 신분이었지만 오늘날 각광받는 전문직업으로 거듭난 사례들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타 전문직업군은 짧게는 수백 수천년, 길게는 100만년이라는 인류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 동안 온갖 고난과 수모, 경우에 따라서는 ‘파리목숨’보다 못한 굴곡진 삶을 살면서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끝에 오늘의 영광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26년에 불과한 주택관리사가 이 정도 발전해온 것이 어찌 보면 대견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20가구 이상 의무배치’ ‘사 시험’ ‘상대평가’ ‘격년 시험’ 등등 빼앗기거나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면 아쉬움도 크다. 천만다행으로 법정법인 대한주택관리사협회가 지난해 말 시험위원회 민간이양 등을 골자로 한 입법안을 저지시킨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상대평가제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자못 기대가 된다. 하지만 진실을 호도하고 왜곡, 과장을 일삼는 언론의 엉터리 보도에 대해 좀 더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저질스러운 매체를 상대로 고소, 고발 등 강력한 본보기를 보이라는 뜻이다.
주택관리사 등도 울분만 토로할 것이 아니라 언론의 특성 내지 속성을 잘 이해하고 냉철해져야 한다.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 클리프는 뉴스에 대해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고 갈파했다. 일상적인 현상들은 뉴스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특종만 찾거나 ‘받아쓰기’를 일삼는 일부 기레기들의 눈에 선량한 대다수 주택관리사 등의 눈물겨운 희생, 봉사 따위는 눈에 차지 않는다. 보다 큰 문제는 앞으로도 지자체의 관리실태 조사나 비리 보도는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축제는 즐기되 고뇌에 찬 성찰과 함께 자정 노력이 따라줘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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