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우선 양하영의 ‘친구라 하네’ 노래 한 편이다.
 
사랑이란 말하지 못하고 그저 친구라 하네. 긴 날을 마주보며 살아도 친구라 하네. 사랑이라 말하면 가슴 떨림 다신 없을까봐 느낌 곱게 간직하며 그저 친구라 하네. 인연 인연보다 강한 운명 운명보다 더 따뜻한 신의 사랑으로 만나 서로 보내고 서로 느낌 되고 서로 닮아가며 서로가 전부인 친구사랑이란 말하지 못하고 그저 친구라 하네. 긴 세월 지나가도 사랑을 친구라 하네. 사랑이란 말하면 가슴 떨림 다신 없을까봐 인연 인연보다 강한 운명 운명보다 더 따뜻한 신의 사랑으로 만나 서로 보내고 서로 느낌 되고 서로 닮아가며 서로가 전부인 친구사랑이란 말하지 못하고 그저 친구라 하네. 긴 세월 지나가도 사랑을 친구라 하네. 사랑이란 말하면 가슴 떨림 다신 없을까봐 사랑이야

그렇다. 그 가슴 떨리던 첫사랑도 세월 흐르면 가슴이 떨리지 않고, 그 가슴 두근거리던 부부의 연도 세월 흐르면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 그래서 신의 운명으로 만난 부부라 해도 긴 세월 흐르면 친구 같은 부부인가 보다.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때도 있었고, 살다보니 펄떡이던 심장 사그라지고 열정은 식어 이혼을 생각한 때도 있었지만, 내가 아프면 너밖에 없고, 네가 아프면 내밖에 없는 오래된 친구 같은 부부.
가까운 사람이 뇌를 심하게 다쳐 병원에 문병을 갔다. 그의 곁에 앉아 걱정하는 사람은 그의 아내다. 하고 많은 사람이 있어도 그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 문병객이야 인사 한 번 하면 떠나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은 부부라는 사람이다.
나는 문병을 마치고 병원 대기실에 쌍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본다. 이름이 불리어질 때마다 동행이 되어 함께 일어나는 사람들. 찌지고 볶으며 살아온 날들, 비바람 몰아쳤던 날들, 입으로 전쟁을 치른 날들은 이미 무효인가 보다. 휠체어를 밀면서, 링거를 들고서, 목발을 짚고서 함께 걷고 같이 걷는 사람들. 가슴이 울렁거리고 설레는 부부가 아니라, 곰삭은 햇살이 낮은 곳으로 내려앉은 오래된 친구다. 친구란 내 짐을 대신 지고 가주는 사람이라 하질 않던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말했었지. 가족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면,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고. 병원에 와보면 안다. 내가 선택한 부부라는 그 사람이 태초에 빛이 있었다는 성경이고,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는 괴테란 것을. 나를 기쁘게 하고 설레게 하는 그 무엇보다, 내 슬픔을 같이 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원수 같은 때도 있었지만 부부라는 것을.
친구는 제2의 자신이라고 한 오래된 친구가 부부가 아닐까.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오래된 부부가, 친구 같은 부부가 아닐까. 성경과 불경이 천국과 극락이 저기에 있어 좋다고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대도 병원에 와보면 부부가 좋다는 걸 배운다. 되기 아프면, 진심어린 마음도 거짓 없는 사랑도, 들어올 구멍 하나 없지만 말이다. 이보다 더 의미 있고 풍요로운 말은 없다는 게 ‘너만이 너다’라고 한 세익스피어가 되기 아팠을 때 한 말이었을까.
꽃샘추위가 봄꽃을 더욱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처럼, 병원에 와서도 부부싸움을 하는 걸 보면, 느슨해지려는 사랑에 촉매제가 되고 방전이 되어가는 행복을 볼트와 너트로 조이는 것이라 얼른 이해한다.
그래서 이청준은 ‘문학은 그 삶을 베낄 뿐’이라고 했나 보다.
문정희의 ‘남편’이란 시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가정의 달 5월에는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스승의 날도 있지만 둘이 하나가 된다는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건강한 부부와 행복한 가정은 밝고 희망찬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제정된 지도 오래되었다. 외롭고 후회되는 황혼이 오기 전에, 립스틱 짙게 바르고 손잡고 발맞추어 저 꽃밭을 천천히 청춘으로 걸어보면 어떨까.
오늘 아침, 서해냐 남해냐 여행의 행선지를 두고 가시 돋은 부부싸움을 했다면 정호승의 ‘가시’라는 시를 읊어보면 참으로 좋으리.

장미 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 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서둘러 걸으면 신의 거주지라는 라싸에 도착할 수 없다고 했다.
남과 비교되기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게 부부가 아니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아름다운 게 꽃이 아니라고도 했다.
꽃보다 아름답고 눈부신 당신. 떠나기 좋은 이 계절에 단 둘이 떠나보면 어떨까. 부부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친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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