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임고서원-포은 정몽주

☞ 지난 호에 이어
589㎡ 규모로 건립된 포은유물전시관에는 성리학의 보급과 실천에 힘쓴 포은 선생의 일대기와 이름에 얽힌 설화, 포은 선생 문집, 입고서원연혁, 소장전적 등이 전시되고 있어 선생의 곧은 절개와 효심, 높은 학덕을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제 김득배문’은 김득배를 장사지내며 지은 제문이다. 포은 선생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김득배를 위해 문신의 예로서 장사지내며 그를 위한 제문을 남겼다.
선죽판은 장충판 중 하나로 장충판은 조선 성종이 1486년 포은 선생의 충과 효를 널리 장려하기 위해 경상도 관찰사 손순효에게 명해 내린 문서로 후에 여러 차례 보태어졌다. 총 18장의 장충판 중 선죽판은 탄은 이정이 그린 녹죽을 판각한 여덟 번째 판이다.
포은의 또 다른 유형의 시 한편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봄비가 가늘어서 방울도 짓지 못하더니/ 한밤중에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눈 녹아 남쪽 시내에 물이 불어나니/ 새싹들이 많이도 돋아났겠다.

‘봄비’라는 작품이다. 봄비는 너무나 가늘어서 마치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처럼 사각사각 내린다. 비를 맞아도 옷이 젖는 줄 모른다. 낮에 시인은 땅을 촉촉이 적시며 봄비가 내리는 것을 봤다. 아! 봄이 왔구나.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어 흥분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밤중에 호롱불을 켜고 책상 앞에 혼자 앉아 본다. 들떴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방 안의 공기도 며칠 전 같지가 않다. 찬 기운이 수그러들고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가만있자 아까부터 자꾸만 무슨 소리가 소곤소곤 들려오는 것 같다. 시인은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창 밖에 제법 빗줄기가 굵어지는 모양이다. 지붕 위로 처마 끝으로 빗방울이 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니면 혹시 하루 종일 내린 보슬비가 산 속에 쌓인 눈을 녹여 시냇물이 불어난 걸까? 시인이 방 안에서 들은 소리는 비 오는 소리였을까, 시냇물 소리였을까? 시 속에서 시인은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빗소리인지, 시냇물 소리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꼭 집어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소곤거리는 것도 같고 웅성거리는 것도 같고 쟁글거리는 것도 같은 그 소리가 내 방 안에도 들려오기 시작한다. 시인은 방 안에 앉아서 소리를 따라 생각에 잠긴다. 산 속 깊은 곳에 쌓인 눈도 이제 녹기 시작하겠구나. 깊은 산 속에는 지금쯤 새싹들이 언 땅 위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고 있겠지. 이 밤 봄비를 맞으며 겨우내 언 몸들을 녹이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시인은 한 없이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포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충신, 절개 우국충정 이런 것인데 그것은 극히 관념적이고 한정된 사고에 불과할 뿐이다. 이 시 한편을 감상해보면 얼마나 그의 마음이 포근하고 여린 감성을 가진 분인지 확연히 느낄 것이다.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가 면면히 들어나는 시 한편을 읽어보는 것도 그를 아는 또 다른 한 방편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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