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뭐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좋은 느낌이 이어진 날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4월, 봄 어느 날인데 무엇이 나를 이토록 행복하게 할까를 되짚어 본다.
정해진 스케줄이 없는 날이다. 이 나이에 자유로움이 공황증으로 이어지는 시인이 있었는데 편안히 쉰다는 자체로 좋다는 것이 묘하게 기분이 좋다.
아침 운동 차 나왔다. 올해 만난 날씨 중 최고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온 동네가 꽃동네다. 나는 구름송이가 걸린 듯한 나무를 향해 걷는다. 얼마 안가서 아주 특별한 풍경과 마주친다. 아직 벚꽃이 하르르 지기에는 이른데, 동백꽃 떨어지듯 꽃 목이 잘려 길바닥이 하얗게 떨어져 있다. 직박구리가 벚꽃 속의 암술을 쪼아 먹은 것이다. 지난해에는 앞 빌라의 꽃 목을 자르더니 올해는 우리 아파트의 벚꽃을 따먹는다. 밤새 떨어진 꽃 목이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새들의 먹이가 궁하다는 예증이기도 하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빨리 봄이 내 곁에 올 줄 알았는가. 사람들은 앞다퉈 봄나들이로 분주하고 거리는 텅텅 빈다. 학동기 자녀를 한 학년 높여둔 학부모들도 긴장이 다소 해소되고, 정치인들은 선거 스케줄에 맞춰 바쁘고 꽃들은 저들 스케줄대로 피고 지느라고 바쁘다. 모두가 소리없이 바쁘다. 나는 새로 구입한 커피 머신 덕분에 연신 커피 내리기에 바쁘다. 서재로 들어가며 한 잔, 나오면서 한 잔, 다시 들어가며 한 잔, 손이 바쁘고 홀짝거리는 입도 바쁘다. 그래도 좋다.
티끌 없는 하늘 아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싶어서 갓 돋아나는 어린잎들의 축제장인 공원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설유화 잎은 동글고 작아서 연두색 형광구슬이 맺힌듯 신비롭고 풍년화는 꼬리를 내린다.
연자줏 빛 목련화가 피는 공원의 외진 자리로 자주 간다. 내가 정해둔 나무 몇 그루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봄을 보내야 할 것 같아서 자주 본다. 거리로 나가보기도 한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곳곳이 꽃거리요 꽃동산이다. 개나리는 축 늘어져야 제 멋이고 벚나무는 무리지어 있어야 흐벅진데 목련만은 외롭게 한 그루씩 있기를 바란다. 저들 꽃잎의 곡선을 음미하려면 여백이 필요하고 개성이 살아나야 하므로 송이도 많지 않기를 소망한다. 헌데, 양지의 꽃들은 음지의 꽃들보다 한결 일찍 피고 있으며 따뜻해보이고, 음지의 꽃들은 음산하고 추워 보인다. 그렇지만 어찌 모두가 좋을 수 있는가. 일찍 피어 사랑받으면 일찍 지고 늦게 피면 싱싱하게 오래 간다. 인생살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꽃 피어 배우고 새 울어 배우는데 서정춘 시인의 짧은 시구가 귀갓길에 떠올라 봄이 애잔하다.
꽃 피워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들어갔다는
소식

봄, 파르티쟌이란 시의 전문이다.
남녀 사랑보다 무서운 게 사상이라는 말을 이렇게 간결하게 시로 말하는 시인의 가슴은 어떻게 생겼을까. 파르티쟌은 곧, 빨치산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사상보다 더 무서운 게 종교인 것 같다.
엊그제 공세리 성당과 합덕 성당을 거쳐 신리성당까지 봄나들이 겸 성지를 돌았는데 순교자를 낸 땅에서 그냥 넋놓고 앉아있다가 나는 웃음을 찾았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순교해 얻은 종교의 자유를 나는 대가도 치르지 않고 안정감있게 누리고 산다는 게 고맙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했다. 나는 후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우선 한 송이 꽃처럼 내가 단 하루라도 ‘웃음꽃’이 되면 세상에 보답하는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내가 나로부터 자유를 얻어 편안한 얼굴을 가지는 것,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얼굴을 가지는 것, 하늘 아래 서 있기만 해도 기분 좋은 날처럼 내 곁을 스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나를 단 한번만이라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돌아온 날, 나는 꿈속에서 어둠을 탈출했다. 얼마나 그 각오가 컸던지 빛이 쏟아지는 출구가 보여서 힘껏 점프를 했는데 내 몸이 솟아올랐다. 눈이 떠졌다. 내가 요 밖으로 튀어나가 있다. 일어나 거울을 보니 내가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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