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앤서니 다운즈는 선거에 대해 “유권자라는 소비자가 정당이라는 공급자들로부터 표라고 하는 돈을 주고, 정책이라는 상품을, 선거라는 시장에서 사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라는 말로 선거의 중요성을 일깨우기도 했다. 그런 때문인지 민주주의가 성숙한 선진국일수록 선거를 함께 참여하며 즐기는 축제 분위기로 치른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하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국가와 사회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주어진 일들을 수행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의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분열과 갈등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전쟁’과도 같다.
일찍이 공자는 ‘세상을 바로 잡는 도리가 곧 정치’라는 뜻에서 ‘정자정야’(政者正也)라 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 정치는 뒷골목 건달들의 분탕질과 다를 바 없어 온갖 암투와 배신이 난무하는 미국 영화 ‘비열한 거리’를 연상케 한다. 하여 국민들은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는 국회를 보며 지긋지긋하고 넌더리가 난다고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민주주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의 본질 자체가 국민의 표로 승부를 가르는 ‘권력투쟁’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정쟁도 필요하고 대결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거기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히 존재할 터이고 그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아이들에게 ‘무릇 정치란 사람들 사이에 생각이 다르거나 다툼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는 활동’이라고 가르친다. 또 ‘치열한 토론으로 의견의 간극을 좁히고 그래도 이견이 남으면 다수결로 결정을 내리고 패자는 이에 승복하는 게 민주주의의 요체’라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제 정치에서 꿈과 희망을 찾는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케 하고 상호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다’는 사전적 의미의 정치도 빛이 바랜지 오래다. 절망의 정서가 사회 곳곳을 파고들고 있는데도 정치가 파벌과 작당에만 몰두하느라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을 저버린 유권자의 탓도 있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실시된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거 전 유권자들은 정책과 공약을 제일 중요한 선택 요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정당과 인물·능력에 이은 세 번째 기준으로 밀려났다. 정책 선거가 아닌 지역주의 선거에 함몰된 탓이다.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 되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는 루소의 비판을 실감나게 해주는 대목이다.
국회의원은 300명 중 1명에 불과하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입법체이자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국가대표이며 200개에 달하는 특권을 누리는 갑(甲) 중의 갑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4·13총선에 전국 253지역구에서 총 944명의 후보자가 등록했는데 5명 중 3명은 전과 보유자, 6명 중 1명은 병역 면제자, 7명 중 1명은 납세 소홀자로 밝혀졌다. 가뜩이나 멀쩡하던 사람도 여의도에만 들어가면 이상해진다는데 이런 허접스러운 자들까지 가세하면 여의도의 정치공학은 또 어떻게 변질될까. ‘막장 공천’에 따른 ‘국X의원’ 양산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게다가 ‘심판론’과 같은 살벌한 이분법적 전투성 구호에 재탕, 삼탕으로 우려낸 무성의한 정책, 실현 불가능한 표퓰리즘 공약의 남발 등은 모두가 유권자를 ‘모셔야 할 주인’이 아닌 ‘표 찍는 기계’ 쯤으로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참으로 무례하고 오만불손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고개를 돌리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정치가 희화화되고 냉소주의가 만연한다고 해도 그럴수록 유권자의 한 표는 소중하게 행사돼야 한다. 좋은 정치를 이루는 궁극적인 책임은 결국 유권자인 우리들 자신에게 있고 우리의 깨끗하고 소중한 한 표가 우리의 운명은 물론이고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스스로 자신의 발등을 찍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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