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의 여유

 

 

김 소위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사령관 이하 모든 장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분대장격인 포반장들에게 공격명령을 하달하였다. 김 소위가 하달하는 공격명령은 FM에 나온 적정, 지형과 기상조건, 아군의 상황, 화력지원 등 일반적인 요식이 무시된 채 간단하였다.
“공격 목표는 전방 3부능선의 적 방카, 저기 소나무를 기점으로 1분대는 좌측으로, 2분대는 우측으로 공격한다. 중앙은 3분대가 맡으며 4분대는 예비로서 3분대 뒤를 따르며 소대장이 지휘한다. 공격 개시는 3분 후 이곳에서 실시한다. 이상!”
그리고는 3분 후 소대는 공격 개시를 하였다. 김 소위가 봐도 소대원들이 공격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의 모습이다. 대형유지는 고사하고 분대구분도 안될 정도로 엉키기도 하였다. 어쨌든 30여분만에 공격목표를 점령하였다. 목표 점령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복귀명령을 받았다. 흡사 패잔병 같은 모습으로 훈련장에 복귀하였더니 중대장과 대대장 및 작전장교만 남아 있었다.
대대장은 김 소위를 보자마자 호통부터 쳤다.
“김 소위 이새끼야! 명령하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따위 밖에 못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휘봉으로 배를 지르고 어깨를 강타했다. 김 소위는 고통을 참으며 자세를 바로 잡고자 했으나 대대장은 투박한 군화발로 소위 촛대뼈나 허벅지를 번갈아가며 찼다. 뿐만 아니다. 주먹으로 가슴을 몇 대나 쥐어 박았다.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대대장은 옆에 있던 중대장에게도 지휘봉으로 어깨를 툭툭 내리치고 배를 찌르곤 했다.
“야! 중대장, 소대장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이게 무슨 망신이야, 저 따위 새끼가 선임 소대장이라고,!”
소대장, 중대장이 혼쭐나는 모습을 보는 소대원들은 사시나무 떨듯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대대연병장에 전 병력이 집결하였다. 사단장님의 훈시가 있다는 거다. 엊그제 일 때문에 사단장님이 특별 정신교육을 하시려나? 김 소위는 아직도 욱신거리는 온몸을 지탱하며 열중 쉬어자세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사단장을 비롯한 참모들과 연대장이 단상에 나타났다.
“사단장님에 대하여 받들어 총!”
대대장의 구령에 따라 전 병사들이 ‘충성!’하면서 ‘받들어 총’ 자세를 취했다. 이어 사단장의 훈시가 있을 차례인데 뜬금없이 교육훈련 모범소대장 표창장 수여가 있다는 것이다.
“김민철 소위 앞으로!”
사단 인사참모의 호명이었다. 김 소위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좌우로 둘러보았으나 대대에서 김민철 소위는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엉거주춤하였다.
“김민철 소위 어서 나와!”
인사참모의 재촉에 김 소위는 엉겁결에 단상으로 올라갔다.
『표창장. 29연대 8중대. 소위 김민철. 상기인은 초급지휘자로서의 풍부한 자질과 덕성으로 부하들을 지휘통솔과 교육훈련에 모범이 되어 이에 표창함. 1974년. 6월 25일. 사단장 소장 신정수』
표창을 받긴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대대장이나 중대장 역시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사단장은 6·25를 맞이하여 교육훈련에 더욱 매진해 줄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훈시를 끝냈다.
중대로 복귀하니 통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사령부로부터 온 것이다. 사령관의 특별 지시사항으로 ‘초급 지휘관들이 상황에 맞게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토록 하여야 할 것임. 초급 지휘관들이 상황이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대를 지휘하여 목표달성을 못하는 경우가 많음. 예를 든다면 5분후에 공격명령을 내려야 할 소대장들이 상급부대에서나 필요한 명령문을 작성하고자 시간을 허비하여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초급 지휘관의 명령은 어제 9사단의 소대장과 같이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명령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임’
김 소위는 중대장으로부터 건네받은 통신문을 읽고는 대대장으로부터 흠씬 맞았던 온몸이 욱신거리는 고통 때문에 눈물이 나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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