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의 여유

 

6월의 햇살은 뜨거웠다. 소대원들은 포반별로 훈련에 열심이다. 직책에 따라 81㎜ 박격포의 포신을 메고, 포판을 움켜잡고, 포다리를 들고서 포반장의 지휘에 따라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1포 방열 끝! 2포 방열 끝! 3포 방열 끝!
병사들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FDC(사격지휘반) 운영계획을 짜느라 지도와 씨름하고 있는 김 소위는 무전병이 넘겨주는 수화기를 받았다. 중대장으로부터 오는 무전이었다. 군사령부에서 교육훈련 상황을 점검하고 있으니 교육훈련을 철저히 하라는 지시였다.
이미 몇 차례 반복되는 지시인지라 건성으로 철저히 하고 있음을 보고했다. 며칠 전부터 상부로부터 군사령부에서 불시에 교육훈련 상태를 점검한다는 내용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기 때문에 여느 때와 달리 긴장감을 갖고 교육훈련에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 달이면 중위로 진급하여 대대나 연대참모장교로 보직 이동을 기대하고 있는 김 소위로서는 이번이 마지막 훈련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벌써 일주일이 지나다보니 어느 정도 피로감이 쌓이면서 약간의 요령도 부려가며 점검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더한다면 자신의 소대가 점검대상에서 아예 제외되는 행운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무전병이 다급한 소리를 쳤다.
“소대장님, 군사령관님이 이쪽으로 이동 중이랍니다.!”
“뭔 소리야! 군사령관님이라니! 사령관님이 이곳에 오신다고?”
‘군사령관님이 직접 점검할 리는 없을 거고 순시하시는 건가? 순시를 하더라도 하필이면 이곳으로…. 이곳은 소부대가 훈련하는 장소이므로 대대 CP도 없는 곳인데 사령관님이 이곳에 뭣하러 올까? 물론 이곳으로 온다하여도 반드시 우리 소대로 오는 것은 아닐테지만…’
김 소위는 4성장군의 군사령관이 소대훈련장에 순시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벗어 두었던 철모를 다시 쓰고는 소대원들에게 비상상황임을 전파하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느닷없이 헬기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임시 OP(전방 관측소)로 운영하고 있는 저편 언덕바지에 헌병차가 경광등을 번쩍이고 있었다. 뒤이어 언덕바지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장교들이 훈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과 100여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이기에 그들의 계급장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4성장군 군사령관을 비롯한 장군들도 여러 명 보였다.
‘점검이 아니라 순시 오셨구먼, 점검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김 소위는 더욱 분주히 돌아다니며 소대원들을 독려하였다. 뒤따라 오던 무전병이 다급하게 수화기를 건넸다.
“나, 연대장이다. 귀관은 즉시 소대원을 이끌고 OP로 집결하라! 이상!”
이 무슨 날벼락인가? 김 소위는 서둘러 소대원들을 이끌고 OP에 당도했다. 그곳에는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등의 지휘관들이 줄줄이 사령관을 중심으로 도열하고 있었다. 연대장이 직접 김 소위로부터 보고를 받고는 곧바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귀관이 소대장인가? 이리 와봐!”
풍채 좋고 후덕하게 생긴 사령관이 김 소위를 불렀다.
“충성! 소위 김민철, 사령관님께 불려왔습니다.!”
김 소위는 목이 터저라 복창하였다. 최 말단 초급장교인 소위가 4성장군 대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을 정도인데 사령관에게 불려갔으니 눈 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였다.
“그래 귀관, 수고한다. 귀관은 소대 공격명령을 하달할 줄 아는가?”
“예! 할 수 있습니다!”
공격명령이라니? 보병 소대장도 아닌 81미리 박격포 소대장이 공격명령을 하달하는 일이 없는데…. 그러나 못한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귀관, 저기 3부 능선쯤에 바위가 보이지, 저 바위를 적의 방카로 가상하고 5분 후에 소대 공격을 개시토록 해봐, 공격개시선은 여기야”
명령을 받은 김 소위는 눈 앞이 캄캄했다. 공격명령을 작성해본 것은 보병학교 기초군사교육과정에서 해본 이래 한 적이 없다. 또한 박격포 소대를 이끌고 보병부대 공격훈련을 해본 적도 없다. 게다가 5분 후에 공격하라니! 공격명령을 작성하고 하달하자면 지형정찰부터 시작하여 몇 시간이 필요한 과업인데 5분이라니.
“김 소위, FM대로 하는 거야, 알았지!”
중대장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격려하듯 하는 말이었지만 김 소위는 FM이라는 말에 더욱 주눅이 들었다. FM을 잊은 지가 언제인데….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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