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가평의 한적한 길을 차로 지나다가 아난티 골프장에서 나오는 젊은 여인을 만났다. 배낭이 제법 무거워 보인다. 우리는 차를 세웠다. 시골길이라 지루하게 걸어야 하므로 가는 길에 내려줄 심산이었다.
차창문을 열고 태워다준다고 하자 그녀는 “간(감)사합니다”하며 차를 탄다.
“일본사람이신가요?”
“네.”
“무슨 일로 골프장에서 나오시나요.”
‘보고싶다’의 드라마의 촬영지라서 기념으로 보고 가려고요.”
그녀는 가방에 단 배우 유승호의 마스코트를 보여준다. 일본인 특유의 관광버전이다. 
안전벨트를 착용하게 하고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길이며 이곳은 어느 경로로 오게 됐는지 물었다. 그녀는 안내 책자에 한글로 메모된 문구를 보여준다. 
청평까지 전철로 와서 시외버스를 이용했으니 대단한 열정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다. 다음 일정이 동대문시장이라고 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려던 참인데 포기하고 그녀를 서울의 동대문시장까지 데려다 주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 말을 하려던 참인데 그녀가 가방에서 작은 과자봉지를 두 개 내놓으며 애교스러운 말투로 “간사합니다” 그런다.
차는 움직이고 나는 움직이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듯 그녀와 대화를 이어갔다. 유학생에게 한글을 배웠다며 한국말은 서툴지만 충분히 소통할 수 있게 한다. 그녀는 연상 벙싯거리며 고맙다는 말은 연거푸 하더니 또 줄 선물이 있다며 가방을 열어 핸드프린팅한 아사면 목수건을 준다.
그녀는 조금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일본여행 가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도쿄 뒷골목의 우동이 정말 맛있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우동을 시켰더니 훗동인 줄 알고 방석을 6개나 가져다준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 여성들의 두 표정도 말해줬다. 전후 시대의 여인에게서는 엄격한 표정이 보였고 신세대 젊은이들에게서는 상냥함이 넘치더라고 했다.
그녀는 여행 중에 지금처럼 문화가 섞이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다며 예쁜 종이 포장을 한 나무젓가락을  또 한 세트 꺼내 줬다.
한강을 끼고 달리는 고속도로는 매끄럽고 차창 너머의 햇살은 우리들처럼 따스하다. 나는 일본여행 중에 만난 바닷가의 시인 동상을 아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어느 지역인지 몰라서 답을 못하겠다고 했다. 일본에서 무역회사에 다니는데 종종 한국을 오간다고 하며 회사 지점이 한국에도 있다고 한다.
그녀는 싱글싱글 웃으며 좋은 아줌마를 만나서 추억이 있는 여행을 하는 게 너무나 좋다고 한다. 서서히 그녀와 헤어져야 하는데 나도 그녀에게 무엇인가를 주고싶어서 가방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딸기 모양의 쇼핑주머니를 내줬다. 그녀는 그것이 일본에서 파는 것이라고 안줘도 괜찮다고 한다. 난색을 하는 나를 보고 그녀가 말한다.
“저에게는 추억을 주었잖아요.”
그녀가 능통하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군자역에 내려주고 5호선을 이용하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나는 참 푸근했다. 그녀에게 우리를 거리낌 없이 믿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참 순진한 여성이다. 
그녀는 자기 회사 이사님에게 드린다고 아난티 클럽의 로고가 새겨진 골프공을 사고 골프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다음 내려오는 중이었다. 그녀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서울에  접근하려면 한나절을 다 보내야 할 형편이다.
도모꼬, 그녀가 일본에 가면 추억을 이야기할 거라고 했다. 아주 오래된 인연처럼 그녀가 간다 하니 서운했다. 피천득의 인연이란 글이 생각났다. 나는 차에서 내려 여행을 잘 하고 돌아가라고 꼬옥 안아주고 헤어졌다. 짧은 만남  긴 여운, 젊은 남녀라면 이방에서 만났을지라도 운명처럼 보고싶어지고 그리워할 것 같다. 언제라도 누군가에게 서운하지 않게 내어줄 것을 챙겨가지고 다니려면 앞으로 내 가방은 좀 더 무거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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