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용계서원
유형문화제 55호(1974. 12. 10.)로 지정됐으며 경북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303에 소재하는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경은 이맹전(1392~1480)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서원이다. 이맹전은 조선 단종(제위 1452~1455)을 위해 수절한 생육신의 한분으로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탐내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보냈다.
정조 6년(1782)에 왕명으로 토곡동에 건립된 용계서원은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노항동으로 옮겨 서당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올린 누각건물이다.

◈강호정
유형문화재 71호(1975 8. 18.)로 지정됐으며 경북 영천군 자양면 성곡리 산 78에 소재해 있으며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대장 정세아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누각이다. 선조 32년(1599)에 지은 후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가 있었는데 지금의 건물은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해 1977년에 현 위치로 옮겨 다시 지은 것이다.
정세아는 임진왜란 당시 영천, 경주지방을 되찾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전쟁이 끝난 뒤 국가에서 수여하는 모든 영예를 사양하고 고향인 용산동에 이 정자를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양쪽에는 각 2칸의 방이 있고 가운데 1칸이 마루로 꾸며져 있으며 화려한 난간을 설치했다. 뒤에는 2채의 작은 부속건물이 있는데 그 마당을 통해 정자로 오르게 돼 있다.


◈영천 신월동 3층 석탑
보물 제465호(1968. 12. 19.)로 지정돼 있으며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 205-1 신흥사에 소재하고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되고 있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는 4.75m이다. 탑이 세워질 당시의 절의 이름이나 규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최근 이 터에 법당을 짓고 ‘신흥사’라는 이름을 지어 탑을 보존하고 있다.
이 탑의 기단은 2층으로 마련하고 그 위로 기와집 모양의 탑신을 3층으로 쌓아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기단은 위, 아래층 모두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 부분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으며 위층 기단 각 면에는 8부중상을 새겨놨다. 8부중상이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모습으로 석탑에서는 주로 기단에 새기는데 탑신에 모셔진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탑신은 각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사용했으며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조각했다. 1층 몸돌에는 4면 모두 문짝 모양의 조각을 새기고 각각 그 안에 자물쇠와 문고리 모양의 조각을 표현해 놨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모두 4단으로 새겼고 처마선은 수평을 이루나 두꺼워 보인다.
지붕돌 경사면의 네 귀퉁이는 이러한 두터운 지붕돌에 비해 아주 경쾌하게 위로 치켜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l층 몸돌이 큰 것에서 오는 불균형이 있고 각 4면에 모두 조각을 새겨 과장된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당시의 수법만은 잃지 않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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