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의 여유

 

최 과장은 점심 먹고 오는 길에 기어코 복권을 사고 말았다. 그것도 3세트씩이나 말이다. 아침에 눈 떠서부터 내내 생각하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가끔씩 동료들과 함께 재미 삼아 한두 장 사보긴 했지만 이렇게 많이 사보긴 처음이다. 간밤의 꿈이 무언가 암시하는 것 같아 그 의미를 생각하느라 오전동안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였다.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손가락 세 개를 펴시면서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아주 흐뭇한 웃음을 지으셨던 것이다. 해서 최 과장은 요모조모 생각하다 복권을 사기로 했던 것이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건만 전세방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자식의 처지가 안타까워 아버님이 도와주기 위해 현몽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손가락 세 개의 의미대로 복권 3장을 사는 순간부터 일확천금이 쥐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설레었다.
‘30평짜리 아파트부터 마련해야지, 그리고…’
“과장님, 좋은 일 있으신가 봅니다”
어느 틈에 매사에 끼어들기 좋아하는 정 대리가 뒤따라오면서 능글맞게 말을 건넸다.
‘이크, 이 친구가 내가 복권 사는 걸 보았나? 에라 모르겠다’
“으-음, 좋은 일은 뭐…. 나도 복권 한번 사봤어. 전세방 신세를 면하려고 말이야”
“예, 그렇군요, 좋은 꿈을 꾸셨어요?”
어쩔 수 없이 최 과장은 꿈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자 정 대리는 그 꿈은 보통 꿈이 아니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당첨되거든 술 한 잔 거나하게 사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약속까지 해버렸다.
정 대리의 맞장구에 더욱 꿈에 부푼 최 과장은 들뜬 상태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데 느닷없이 정 대리가 다가와서는 한마디 던졌다.
“그런데 과장님, 로또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다른 복권도 사시는 게 어떨까요? 주택이나 또또 등”
“아차 그러고 보니 그러네”
결국 최 과장은 퇴근길에 주택복권을 비롯하여 추첨식 복권을 종류마다 3세트씩 더 사고는 저녁을 먹은 후 아내에게 자랑삼아 말했다. 아내는 처음엔 쓸데없는데 돈을 낭비했다며 온갖 구박과 핀잔을 하더니만 최 과장의 확신에 그녀도 점차 억대의 꿈에 부풀게 되었다.
“그런데 여보, 아버님의 손가락 3개의 의미가 꼭 3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잠자리에서 아파트가 어떻고, 가구가 어떻고 하면서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던 아내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말했다.
“무슨 말이야?”
“참, 당신도, 혹시 3조를 의미할 수도 있잖아요”
“3조?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이튿날 최 과장은 아내의 당부대로 각각의 복권 중 3조만 골라 3장씩 샀다.
복권을 다시 사는 것을 본 정 대리가 또다시 끼어들었다.
“과장님, 이왕이면 첫 숫자가 3으로 시작되는 것을 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최 과장은 ‘그만 됐네’하고 일축하였지만 퇴근길에 결국은 거금을 들여 복권별 각 조별 3자로 시작하는 것을 3세트씩 또 사고야 말았다. 덕분에 한 달 용돈을 다 털고 말았지만 확실한 투자를 했다고 생각하니 별로 아까운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후 며칠 동안 최 과장과 그의 아내는 그야말로 희망에 살았다. 그러나 막상 추첨결과는 로또는 전멸이었고 ‘아직도’하면서 기다렸던 다른 복권에서도 겨우 천원짜리 몇 장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다음에는 모조리 ‘꽝’이었다.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용돈 10여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수십억원의 돈이 공중으로 날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꿈 때문에 돈만 날렸다’느니 ‘내 주제에 일확천금을 꿈꾼 것이 잘못’이라는 등의 푸념과 함께 허탈한 웃음만으로 며칠을 보낸 최 과장은 거나하게 취한 채 잠자리에 들어 아내를 안으려는데 아내가 수줍은 듯이 속삭였다.
“여보, 나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아요!”
“뭐라고! 임신?”
최 과장은 믿어지지 않는 듯 되물으며 벌떡 일어났다.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에 다니는 남매가 있는지라 벌써부터 정관수술을 고려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임신이라니!
“지난번 피임이 잘 안된 모양이에요, 벌써 두 달째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순간 꿈 속의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흐뭇해하시던 그 모습.
‘그렇다. 아버님이 점지해준 3번째 아이구나. 아버님, 죄송합니다. 아버님의 뜻도 모르고…’
최 과장은 호방하게 웃으며 아내를 듬쑥 껴안았다.
“어떻게 하긴, 낳아야지, 아버님이 점지해준 아이인데. 허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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