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황 미 화  관리사무소장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빌라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경북도회 감사


2월의 첫날 월요일 아침. 주말의 여독이 덜 풀려서인지 조금은 피곤한 오전을 보내고 있다.
설 연휴 직전이라 몸도 마음도 모두 바쁘다. 방범 공고문도 부착해야 하고, 직원들 상여금도 잘 챙겨줘야지. 명절은 늘 설레지만 내 근무지의 안전을 생각하면 짧지 않은 연휴가 꼭 편치 만은 않다.
오전 10시쯤 한 입주민이 관리사무소로 뛰어 들어온다.
“소장님, 밖에 웬 노인이 쓰러져 있어요!”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 뛰쳐나갔다.
“119 신고는요?” 달려가며 따라오는 입주민에게 물으니,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나오느라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아 관리소로 간 것”이라 한다.
인도에 할머니 한 분이 누워있다. 장갑을 끼고 목도리도 두른 차림에 손가방은 옆 화단에 떨어진 상태.
“할머니, 들리세요?” 아무 대답이 없다. 혹시나 골절이 있을까 싶어 몸을 흔들지 않았다.
달려온 경비원에게 신고를 지시한 후, 코에 손을 대보고 입 가까이 귀를 대봐도 아무런 호흡이 없다. 큰일이다!
곧바로 겉옷 자락을 풀어 헤치고 속옷 위로 더듬어 가슴을 찾아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온 힘을 다해 세며 가슴을 압박하니 진땀이 난다. 끼고 있던 안경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땀인지 눈물인지 콧물인지 얼굴과 몸이 순식간에 젖어버렸다. 오른 손목이 원래 좋지 않은 상태라 통증이 몰려온다. 교대로 깍지를 끼고 온 몸을 실어 쉬지 않고 가슴을 내리 눌렀다.
‘지금 잘하고 있는 거지. 이 방법이 맞는 걸까…’ 머리 속이 하얘지며 오직 할머니의 심장 박동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비켜 보세요. 내가 할게요.” 어느 틈엔가 남자 입주민이 나타났다.
‘나보다야 힘센 남자가 낫겠지’ 생각에 얼른 자리를 내줬다. 그의 소생술이 이어지고 난 계속 할머니의 코와 입을 체크해 나갔다.
“하아…” 한순간 할머니의 입이 열리며 숨이 터져 나온다.
“아이고 이제 됐다!” 언제 몰려왔는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입주민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입주민들이 손과 발을 마사지하고 할머니의 정신을 살피는데 119 구급대가 도착했다. 할머니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1번을 눌러보니 아들이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병원으로 가라고 한 후 나도 할머니의 소지품을 챙겨 곧바로 따라갔다.
의사에게 할머니 상황을 설명하고 아들을 만나 인계한 후 관리사무소로 돌아왔다. 그제서야 겨우 한숨이 내쉬어진다.
온 몸에 기력이 모두 빠져나간 듯 혼미한데 뭔가 알 수 없는 희열이 몰려온다.
‘내가 사람을 살렸구나…’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간신히 오후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저녁 7시쯤 할머니의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비원에게 내 전화번호를 물어 걸었다고 한다.
“어머님은 뇌수술 받고 중환자실에 계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곧 관리사무소로 찾아뵐게요.”
“무슨 말씀을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참 다행이네요. 관리소에는 오지 마세요.”
전화 한 통화에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할머니 앞집에 사는 입주자대표회의 총무가 다음날 찾아왔다.
할머니 수술은 잘 됐지만 말이 정상적이진 않아서 2주 정도 지켜봐야 한단다. 다행이다. 할머니가 얼른 쾌유하셔서 더 건강하고 행복해지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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