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의 여유


양종균 주택관리사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연두색 새싹들이 뾰죽히 내밀며 봄볕에 싱그럽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개나리는 노란 원색을 띠고 진달래는 진분홍으로 짙어졌다.
‘고향의 거기도 진달래가 한창이겠지?’
정말이지 온 산을 발갛게 물들게 한 고향의 진달래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소녀시절까지만 해도 그 절경에 넋을 잃곤 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던가? 진분홍의 진달래는 핏빛의 악몽이었다.
최 여사는 무의식 중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서는 눈물이 고이더니 이윽고 흘러내리고 말았다.
한 마을에 살면서도 그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고 자신은 부잣집 무남독녀였다. 중학교까지는 같은 학교에 다녔으며 그는 전교 1, 2위를 다투는 수재였다. 같은 마을인지라 함께 학교를 오가는 동안 허물 없는 친한 사이가 되었으면서도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남몰래 이성을 느끼기도 했었다.
사실 그 사람은 외모도 헌칠하였고 여러모로 여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던지라 그를 독점하고 싶어 마음을 조아릴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집안 사정으로 진학을 포기하였고 자신은 도심의 명문학교로 진학하면서 서로 간의 신분의 차이가 생기고 말았다.
처음엔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진학을 하지 못한 그가 안쓰럽기도 하였으나 차츰 세월이 가는 동안 당연한 현실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는 지게나 지는 소작농의 하찮은 농사꾼이었고 자신은 대도시에서 공부하는 부잣집의 무남독녀였다. 그럼에도 1년에 고작 몇 차례뿐이지만 고향에 갈 때면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곧잘 만나곤 했었다. 그와 헤어질 때면 항상 아쉬움만이 따라 다녔다.
30년 전의 오늘. 식목일 연휴라 신학기 들어 처음으로 집에 왔었다. 비록 고 3의 바쁜 몸이지만 진분홍빛 진달래로 뒤덮인 뒷산이 너무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네 어른들은 그놈의 진달래 때문에 처녀들이 봄바람 난다고들 하였지만 정녕 곱디 고운 진달래가 필 때면 가슴도 붉어지듯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침의 눈부신 햇살을 머금은 진달래는 진분홍에 더하여 선홍색을 띠면서 정녕 황홀지경이었다. 그 절경에 넋을 잃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났다. 이른 아침이건만 지게를 지고 밭에 가는 길이었다. 밭과는 방향이 다른데도 일부러 들른 것이 분명하다. 반가웠다. 그러나 새치름하게 말했다.
“웬일이야?”
“너가 집에 왔다기에 여기 있을 거라 짐작했지”
“피-. 진달래 보러 왔겠지”
“그래, 진달래가 필 때부터 매일 여기에 들러 너를 생각했어”
“어머! 정말이야? 농담이지만 듣기는 좋은데- ”
“점심 먹고 이곳에서 만나 줄래?”
“야!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학교에 가야 한단 말이야!?”
속마음과 달리 제법 쌀쌀하게 대꾸했었다.
“잠시만이야, 알았지?”
점심을 먹고 그곳에 갔을 때는 그 사람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진달래를 한아름 안고 있었다.
“고마워 나와 주어서, 자 이것을,” 그는 진달래 꽃다발을 건네주며 멋쩍게 웃었다.
“피- 누가 자기 만나러 왔나! 진달래 구경하러 왔지”
“공부는 잘 돼? 어느 대학 갈 건데?”
“어느 대학 가든 그건 왜 물어!” 여전히 쌀쌀맞게 대꾸했다.
“나도 검정고시 쳐서라도 대학 갈 거야. 그리고… ”
 그가 독학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들은 바 있었다.
“그리고, 뭔데?”
“음, 너와 결혼할 거야”
“뭐야, 너, 미쳤어? 누구 맘대로!” 결혼이란 그 말에 얼굴이 붉어지면서 그의 얼굴을 외면한 채 말을 받았었다.
“왜? 내가 가난뱅이라서 안 된다는 거야?, 아님 너의 집 소작농 자식이라서?”
 “누가 그렇데? 갈 길이 다르다는 거지..”
 “갈 길이 뭐가 다른데? 서로 좋아하면 되는 거지, 기다려 주겠지?”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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