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의 감동 실화가 공개되는 영화 ‘히말라야’는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신의 영역에 묻혀 있는 동료 시신을 찾기 위한 뜨거운 여정을 그린 영화이다. 이미 루비콘강을 건너간 위대한 도전은 보상과 명예도 살아 돌아오리라는 기도도 군더더기일 뿐이다. 그곳에 우리 동료가 묻혀 있다는 사실, 그것뿐이다.
역시 엄홍길 역을 맡은 주인공은 어수룩하고 촌스러운 황정민으로 내고장 마산 출신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숙맥으로 주연을 데뷔하면서 ‘너는 내 운명’, ‘행복’, ‘남자가 사랑할 때’ 등 멜로도 있고 ‘바람난 가족’에서 속물 변호사도, ‘전설의 주먹’에서 자식을 위하는 가장도 잘 소화해내며 ‘국제시장’, ‘베테랑’ 등 천만관객을 동원하는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산악인 엄홍길은 2007년 5월 31일 8,400미터 ‘로체샤르’를 완등하면서 세계 최초로 8,000미터급 16좌 완등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지금 마산 옆에 있는 고성의 엄홍길 전시관에는 영화 히말라야를 통해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엄홍길 전시관은 고성의 거류산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각 산악회에서는 그의 기를 받고자 산신제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1985년부터 23년 동안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 산사나이 엄홍길.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와 도전정신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전시관 앞에는 그의 용기만큼 꽝꽝나무가 엄동에도 새파랗다. 꽃댕강, 홍가시나무, 남천과 함께 20개의 키 작은 바람개비가 희망으로 돌고 있다. 가까이에 있어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히말라야는 산스크리스트어로 눈이 거처하는 곳이라고 한단다. 산은 내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주는 것이라고 한 엄홍길은 지금도 네팔 히말라야 오지마을 16개 휴먼스쿨을 건립 중에 있다고 한다. 각종 등산장비와 웅장한 히말라야가 있는 전시관 앞에 서면 인간의 한계가 어디쯤에서 멈출까를 생각해본다.
엄홍길은 우리 곁에 있는 큰 바위 얼굴이요, 초록 우산이다. 히말라야가 그 자리에 있는 한 도전과 구원이라는 우리들의 아포리즘이다.
실화인 ‘라이언일병구하기’도 그곳에 라이언일병이 있다는 사실, 그것뿐이었었지. 생명을 가지고는 대차대조표의 저울이 필요 없다. 생명에 대한 휴머니즘을 일깨우는 인간의 예의에, 무슨 서투른 셈이 필요하며 무슨 어설픈 격식이 필요할까.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는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딸의 젖을 빠는 ‘시몬과 페로’라는 걸작을 남겼다. 생명을 두고는 체면이나 흥정이나 거래가 없다.
고구마는 작은 것이 맛있고 야콘은 큰 것이 맛있다는, 시장바닥의 저 아줌마가 비교하는 큰 목소리는 생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순수한 영혼인 설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도 너무 아름답다. 오스트리아의 등산가이자 작가였던 하인리이 하러가 히말라야 최고봉의 하나인 낭가파르바트 등반을 위해 독일원정팀에 합류하였으나 실패하며 티베트에서 겪은 생활상을 영화화한 것이다. 원정기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영국군의 포로가 되고 5번의 탈출 끝에 성공하여 2,000㎞가 넘는 티베트에 도착하여 7년간 라싸에 머무른 이야기. 
43승 0패의 무패 신화를 달리고 있는 라이트 헤비급 복싱 세계챔피언 ‘빌리 호프’가 아내를 잃고 좌절과 절망 속에서 딸을 구하고자 생애 가장 어려운 시합에 올라서기로 결심한 전율의 12라운드 왼손잡이 영화 ‘사우스포’는 인간승리인지도 모른다. 가장 강렬한 한방은 감동이자 눈물이요 인생이다. 참다가 참다가 피는 설중매는 추위도 바람도 소용없는 인고의 열락이다.
대나무의 마디마디가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평생을 밀봉으로 누설하지 않고 살아가기에 키가 아무리 커도 자빠지지 않는다.
멈춰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최후의 도전은 이미 승부와는 상관이 없다. 질주하는 것은 내 가슴에 탄력을 주고 내 영혼의 볼륨을 높인다.
하늘이 자리를 내준 어둔 지붕 위에 하얀 박꽃처럼 피어나는 사랑.
별이 스스로 빛나는 게 아니라 하늘이 스스로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부모는 하늘이라 하나보다. 바람이 문풍지에 울고 가는 밤, 달빛이 처마 끝에 울고 가는 밤에 동동구루무 한 통 다 못 쓰고 가신 어머니라고 때늦은 눈물을 흘리고, 홍시가 열리면 생각이 난다고 목이 메는 노래를 부른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하늘.
포유동물의 생존 핵심이 포옹과 눈물이란다. 가슴과 가슴을, 마음과 마음을, 심장과 심장을, 맥박과 맥박을 포옹하고 눈물 흘리면 사랑이 아니겠는가.
왼손잡이 하나가 하늘인 사우스포, 나는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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