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일기 68

 

 

입대의 최 병 용 회장
경기 청평 삼성쉐르빌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1962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형 마포 아파트가 생긴지 55년이 흘렀다. 이 정도 세월이면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공동체 문화가 정착이 돼야 할만하지만 현실은 층간소음, 층간흡연, 애완견 등의 문제로 이웃 간 갈등이 증폭돼 살인까지 일어나는 등 정반대로 가고 있다. 아파트는 획일적이고 구획화가 가능한 건축적, 공간적 특성 때문에 입주민들은 어울려 살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가족을 차단한 채 갈등을 자처한다.
평생 돈을 모아 산 내 집에서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이웃 간 갈등으로 이사까지 가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은 웰빙, 웰다잉 보다 더 중요한 시대적 화두가 됐다.
아파트에서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을 몇 가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첫째, 층간소음문제다. 층간소음은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니고 심지어 살인까지 벌어지는 현실이 돼버렸다. 조금만 아래층, 위층을 배려하면 될 텐데 자기 집만, 자기 아이만, 나만 생각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아이들을 키우니까 조금 시끄러워도 돼’라는 생각도 잘못됐지만 아이들이 조금 뛰어 논다고 금방 시끄럽다고 인터폰을 하고 심지어 위층의 소음에 맞서 아래층에서 골프채로 천장을 치는 등 보복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방이나 거실에는 소음을 흡수하는 고무판을 까는 아래층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아래층에 사는 분들이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해서 지금은 조용히 쉴 시간이란다. 낮에 충분히 놀았으니 지금은 뛰면서 놀지 말고 책을 읽고 조용히 쉬자”라고 자녀들을 설득하고 가르쳐야 한다. ‘내 집 바닥이 아랫집 지붕’이란 생각을 한다면 어떤 경우도 아이들이 집에서 뛰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릴 때 뛰어 놀면서 커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식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다. 뛰어 놀게 하고 싶으면 밖에서 실컷 뛰어 놀게 하면 된다. 특히 밤 10시 이후에 아이들이 뛰도록 방치하는 것은 ‘어디까지 참나?’ 인내심을 테스트하겠다는 것과 같다.
아랫집 입장에서도 어쩌다 한번 아이들이 뛴다고 그 한 번의 소음을 못 참고 인터폰을 하기 보다는 ‘내 손자 같은 아이들이 오늘 밖에서 많이 못 놀았구나’라고 생각하며 위층을 배려해야 한다. 소음으로 불쾌하다고 인터폰을 해서 그 불쾌함이 가시면 좋지만, 위층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나올 경우 또 다른 불쾌함만 가중시키게 된다.
아이들이 뛰는 것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층간소음이 어른들의 발자국 소리다. 최근 신축된 아파트들은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바닥을 마루로 시공했는데 이 마루는 성인이 그냥 걷기만 해도 아랫집에 발소리가 울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바닥이 두꺼운 실내화를 신고 다녀야 하고 신지 않고 걸을 경우는 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한다. 새벽잠이 없는 어르신들이 일찍 일어나 ‘쿵쿵’ 거리며 걷는 소음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사람이 걷는 발소리도 이해 못하면 아파트에 살 자격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어르신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것은 자식들의 몫이다.
두 번째는 층간흡연이다. 창문을 열고 사는 한 여름에는 아래층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워 담배 연기가 위층 거실이나 방으로 유입돼 갈등을 유발하고, 겨울 들어 날씨까지 쌀쌀해지면 밖에서 피우던 사람까지 집안이나 현관 앞 복도 등에서 흡연하는 경우가 잦아져 갈등이 생긴다. 특히 환기구가 다른 가구와 연결돼 있음에도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 연기가 전 가구로 퍼져 나가도록 하는 것은 흡연을 가장한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 외부에 재떨이를 비치한 흡연장을 만들어 외부 흡연을 유도하고,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면 황사경보 수준인 90㎍/㎥을 초과해 서울시내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의 4배 가까이 치솟아 이웃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의식이 확산돼야 한다. 층간흡연 피해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규제할 만한 수단이 마땅찮은 게 문제다. ‘내 집안에서 연기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은 내 연기로 인해 피해를 받아도 이해해야 한다’는 의식이 층간흡연 갈등의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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