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설 연휴가 코앞에 다가왔다.
새해가 밝은 지도 두 달째 접어들었건만 우리는 아직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덕담을 건넨다. 설날 역시 새해의 첫날이기 때문이다.
달력에 ‘신정’이라 표기된 양력 1월 1일이 ‘논리적 새해’라면, 음력 1월 1일 ‘설날’은 ‘정서적 새해’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풍속이 우리의 유전자 속 깊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고향이 지방인 사람들은 1월부터 설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산업화가 본격 시작된 1960년대부턴 명절 특별예매 2~3일 전 서울역 매표소 앞에 자리를 깔고 노숙하는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한겨울 한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동양의 신기한 풍속’으로 외국 언론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자가용이 많이 보급되면 표 구하기 전쟁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끝없이 늘어선 차량행렬 속의 고통을 느껴본 사람들은 다시 기차로 회귀한다.
이제 그 모습은 중국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음력설)를 맞아 연인원 29억여명이 대이동에 나설 것이란 소식이다. 중국의 춘제대이동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농경시대엔 모든 가족이 모여 살아 이동의 필요가 없었고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 말부터 농촌 노동력이 대거 도시로 빠져 나갔기 때문이다. 지금도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벽지의 아이들은 1년에 딱 한 번, 춘제에만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본다고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코흘리개를 떼어놓고 농민공 생활을 하는 엄마의 심정이나, 세상보다 더 넓게 자신을 품어주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곧 만나게 될 아이와 부모가 태산보다 높게 쌓여 있던 1년 치 사랑을 듬뿍 나누길 바란다.
그런데 묘하게도 북한에도 있는 설이 동아시아 국가 중 일본에만 없다. 양력 1월 1일인 원일(元日)만 있을 뿐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문물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설 뿐만 아니라 아예 음력 자체를 없애버렸다. 변화에 능하고 외부 환경적응이 빠른 일본답다.
그런 일본의 영향으로 우리도 설을 빼앗길 뻔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신정’만 쇠도록 강요받았다. 설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 정부에게 외면당해오다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돼 하루짜리 공휴일이 됐고, 1989년에 와서야 비로소 ‘설날’이란 본명을 되찾았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만이 아닌 명절풍속에까지 파고들어 있었던 것이다. 설을 행복하게 잘 보내는 것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긴 휴일엔 조심해야 할 것도 많다. 연휴가 길수록 교통사고와 화재 도난 강도 등 안전사고에 노출될 위험이 그만큼 증가한다.
공동주택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집을 비울 땐 신문이나 우유가 문 앞에 쌓이지 않도록 보급소에 미리 연락해 둬야 하고 전기, 수도, 가스밸브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전기장판을 끄지 않고 며칠씩 집을 비우다가 화재사고를 당한 경우도 있다.
관리사무소 역시 휴업에 들어간다. 그동안 최소한의 관리업무는 휴일과 명절에도 상관없이 격일제로 근무하는 기사와 경비원의 몫으로 남게 된다. 관리사무소장과 과장 경리주임 등은 연휴를 즐길 순 있겠지만 최고책임자인 소장의 마음속엔 늘 직장의 관리상태가 어떨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미리 대비해서 무탈한 명절을 보내길 기원한다.
이번 설 연휴엔 경비실에 뜨끈한 떡국 한 사발 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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