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오 민 석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서울 성북구 아파트 입주민들이 작게 시작했던 ‘동행(同幸)’ 바람이 뜨겁다. 모 아파트 입주민들은 넓은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느라 애를 쓰는 경비노동자를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스쿠터를 마련해 줬다. 스쿠터를 선물받은 경비노동자는 입주민들을 위해 칼을 갈아주는 가욋일을 자처했고, 칼 3,000자루 이상을 갈아줄 정도로 입주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성북구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는 경비원 고용안정을 위한 확약식을 여는 등 고용안정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모 아파트에서는 입주민들이 공동전기료 등을 절약해 경비원 임금 19%를 인상해줬다.
또 다른 아파트에서는 각종 계약서에 써왔던 ‘갑·을’을 대체해 ‘동·행’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한다. 함께 걸어가자는 의미와 같이 행복하자는 의미의 중의적 표현으로 동행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갑의 횡포를 없애고 을을 동반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서명란을 횡렬식으로 배치하는 등 작은 부분부터 의미를 실천하고 있다. 법률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작은 차이가 가져올 변화는 매우 크리라 생각한다. 
최근까지도 아파트 경비원이 택배를 받는 문제로 심한 갈등이 벌어졌던 사건, 경비원으로 하여금 입주민들에게 90도 인사를 강요했다고 문제된 사건들이 있었다. 일부 입주민이나 동대표들의 몰지각한 행태이겠지만 이로 인해 해당 경비원이 상처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선량한 입주민들까지도 도매금으로 사회적 비난세례를 받았다. 성북구 아파트 입주민들의 동행계약서는 공동주택 관리에 만연된 갑·을 관계의 폐해에 대해 다수 선량한 입주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동행계약서에서 시작돼 경비원의 급여를 최저임금에 맞춰 인상하는 문제, 경비원 쉼터에 에어컨을 들여놓는 문제들이 입주민들의 호응으로 술술 풀려나가고 있다 한다. 이런 아파트들의 경비원, 미화원 분들은 고개 숙이고 일만 하던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 여러 입주민들에게 먼저 밝은 미소와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더욱 반가운 것은 입주민들의 자발적 동행계약서 체결 운동이 구청과 산하기관, 유관단체들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입주민 스스로 시작한 동행계약서를 상생문화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구청이 적극 호응하고 확대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동행계약서의 표준안을 만들어 배포하고 도입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며 시범적으로 구청과 구도시관리공단이 동행계약을 체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북구민들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한 창의적 해결방안을 만들고 여기에 관이 적극 호응하고 지원하는 모범사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동주택 관리의 여러 정책과 제도들이 관의 주도로 창설돼 입주자들의 관심과 호응없이 처벌과 규제로만 머무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야심차게 도입했으나 입주민들의 참여가 미흡해 끝내는 폐지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 주택관리업자에 대한 입주자의 만족도 평가제도는 관이 주도한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외부회계감사 의무화나 시·군·구의 아파트 비리감사 등도 자칫하면 공동주택 관리현장의 어려움만 가중시킬 뿐 입주자들의 참여와 호응을 끌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현장을 유심히 살펴보면 관이 조금만 챙기고 지원해줘도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입주민들의 자발적 흐름들이 발견된다. 굳이 거창하고 어려운 제도를 만들지 않아도 말이다. 성북구의 사례처럼 이런 것부터 시작하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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