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준 연  여행객원기자
기다림은 설레임이고 희망이다(blog.naver.com/ssolonsun.do)

떠나는 가을
잡을 수 없으니
대추차 한잔에
노래라도 불러보자


역사와 전통,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고장 충청북도 보은은 속리산과 법주사가 유명하다.
법주사는 국보와 보물이 15점이나 있는데 국내 5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힌다. 바로 그 속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내리는 삼가천 물줄기가 두 줄기로 갈라졌다 합류하는 육지 속의 섬 형상의 공간에 99칸 명품고택 선병국 가옥이 있다.
선병국 가옥은 전라도 고흥이 고향인 보성 선씨 선영홍이 보은으로 입향해 아들 선정훈과 함께 당대 제일가는 대목들을 후하게 대접해 마음껏 지었는데 궁궐목수가 도편수로 참여했다. 구한말 전통한옥으로 뛰어난 건축술과 규모를 자랑하는 선병국 가옥은 한옥의 가치뿐만 아니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선씨 가문의 덕행이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선영홍 공의 아버지 선처흠 선생과 경주김씨 부인은 1892년에 효자와 열녀로 명정해 정려각을 세웠다. 전라도 고흥 소작인들의 소작료를 인하하고 면민들의 세금을 내줘 시혜비 철비도 받았다.
보은에서는 한일합방이라는 어두운 시기에도 굴하지 않고 ‘착한 사람끼리 모이면 좋은 본을 받는다’라는 뜻을 지닌 관선정이라는 서당을 세워 인근의 영재들을 뽑아 사재로 교육시키기도 했다. 바로 그 명당에 자리한 명품고택 선병국 가옥에서 늦가을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흩뿌리던 날 하룻밤 묵으며 종부가 정성껏 차려준 종가음식으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보냈다.


한국관광공사의 명품고택 종가음식은 전통과 유교적 가치를 보존하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한옥과 전통음식을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인데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디지털 공간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볼일을 보거나 씻기 위해 신발을 신고 마당을 가로질러야 하지만 기와지붕 처마의 낙숫물 소리와 가을비 머금은 늙은 홍시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따스해짐을 느끼게 한다. 침대의 쿠션은 느낄 수 없지만 궁둥이가 따스해지는 과정을 체험해서 좋다.
그렇게 빗소리 들으며 구들장을 메고 도란거리는데 안채에서 종부의 식사안내 소리가 들린다. 보성 선씨 종가의 내림음식을 맛 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아침일출처럼 붉은 감들이 발처럼 드리워진 대청마루를 지나 안채에서 거하게 한상 받았다.
선씨 종가의 대표적 내림음식은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다는 민어요리이다.
내륙지방인 보은에서 민어는 흔하지 않았지만 전라도 섬이 본향인 선씨 종가에서는 민어매운탕과 민어부레순대를 내림음식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불향이 끝내줬던 닭산적은 많은이들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자극적인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입맛 이지만 우리 전통 종가음식에도 이리 반응하는 것을 보면 분명 우리는 우리의 맛을 잊을 수 없을 듯 싶다.

 

역시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라는 카피가 생각 났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종부가 내놓은 따스한 대추차를 들고 사랑채 앞마당 노송 아래에 앉아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다시 만날 수 없는 2015년 늦가을을 선씨 종가 21대 종부 김정옥 씨가 손수 정성껏 차려 준 종가음식으로 왕이 부럽지 않은 시간 채웠다.
대추가 특산물인 보은은 오장환문학관과 삼년산성, 법주사코스로 늦가을 여행을 떠나도 좋다. 그리고 선병국 가옥 사랑채에서 따스한 차 한잔도 감성적일 것이다.

 

여행정보

-한국관광공사 명품고택
hanok.visitkorea.or.kr/kor/hanok/house/house_detail.do
-선병국 가옥 (blog.daum.net/sammanpyung)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개안길 10-2 / 043-543-7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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