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바람에 흔들리던 억새도 등이 굽어가며 흰 머리카락을 날린다. 배추는 속이 차서 벌써 김장배추 예약하라는 공지글이 떴다. 글을 읽는 동안 배경 화면이 바뀌며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얀 두건을 쓰고 마스크를 쓴 여인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가 하면 마당의 수돗가에 절임 배추가 수북히 쌓인 풍경, 거기서 어머니가 시린 손을 불어가며 배추를 씻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마트에만 가면 고무장갑을 사 나르는 남자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기억은 떨어진 은행잎처럼 차곡차곡 쌓였다가 바람이 부는 대로 날려도 그 아랫잎이 또 드러난다. 무엇인가가 기억을 자극하면 편편이 드러난다. 가을이 깊어가며 비오는 날 마지막 서정을 피워낸다. 고무장갑을 사 나르는 남자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집에서 성장했다. 겨울이면 가게 안에 둬도 두부 양푼에 살얼음이 얼도록 추웠는데, 엄마가 그 두부를 팔고 들어오면 나무등걸처럼 굽은 손가락이 벌겋게 얼어서 아들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는 거다.
어머니의 언 손을 볼 때마다 측은하고 안타까워하며 살다가 도시로 나와 살게 되면서 기억에 묻히고 말았다. 세월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에 급급하게 이어졌고 중년이 돼 아내와 마트에 갈 여유가 찾아들었다. 고무장갑이 다발로 쌓여있는 매장에서 그 남자는 고무장갑을 보는 순간 어머니 손이 떠올랐고 자신도 모르게 쇼핑카에 고무장갑을 담았다.
그 집의 후미진 자리마다 고무장갑이 쌓이고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어지간히 사 나르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그 남자는 어머니를 뵈러 언제 갈지 계획도 없고, 지금 어머니가 아파트에 산다는 것도 잊고 오직 어머니의 거친 손이 떠오르면 고무장갑을 비켜가지 못한다. 현실을 살지 못하고 기억의 어느 날로 퇴행해서 쇼핑을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 사람마다 무의식의 명령으로 저장강박에 걸려 사는 물건들이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 집에는 머무는 자리마다 필기구가 넘치고 남편의 책상서랍 한 칸에는 필기구로 가득하다. 남단의 섬에서 어렵게 공부하며 문구용품이 부족했던 날들의 기억이 꼬리를 치면 ‘지금은 살 수 있으니 마음껏 필요한 대로 사야지’로 이어진다. 제사 음식을 하다가 설탕이 떨어져 맛을 내지 못한 기억을 가진 어느 어른은 마트에만 가면 설탕 포대를 사 나르고, 화장지가 궁한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수시로 화장지를 사 나르기도 한다.
고무장갑을 사는 남자는 수시로 퇴행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고무장갑을 챙길 것이고 설탕을 사 나르는 여인도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마트가 지천인데 기억에서 그렇게 시키는 바람에 그렇게 된다는 거였다. 그 남자에게 어머니의 계절은 만년 겨울이다. 그 남자가 사들이는 고무장갑은 사용하기 위한 장갑이 아니라 어머니를 향한 애잔함이 사라질 때까지 이어질 기미가 보인다. 시린 인생을 보호해주고 싶음일 것이다.
추운 겨울에 한 데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고무장갑의 등장은 실로 큰 인생의 선물이다. 찬거리가 마땅치 않고 냉장고가 없던 시절, 배추를 200포기씩 김장을 해 독을 묻고 김치를 저장하던 날이 불과 몇십년 전이다. 내 어머니도 김장 배추를 씻던 날 우연히 내가 거들어 봤다.
나는 손이 끊어지는 것 같은데 어머니는 시리지 않은 듯 소금물 속으로 들락거렸다. 어머니 손이라고 무쇠손은 아닐진데 묵묵히 찬물 속에서 김치를 헹궈낼 때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일이 내심 공포스러웠다. 나는 배추를 씻어 건지는 것보다 도중에 더운 물에 손 담그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날 저녘 생김치가 상에 놓여도 그 찬물에 아린 손을 담그고 배추를 씻은 어머니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무장갑이 등장한 후 나는 그러한 기억에서 해방되었다. 고무장갑을 사는 남자는 지금 기억으로부터 해방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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