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오 민 석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주택법령에 따라 공동주택의 입주자는 장기수선충당금을 납부해야 하고 입주자들이 납부해 적립한 장충금은 원칙적으로 장기수선계획에 따른 공동주택 공용부분 주요시설의 교체 및 보수에 사용해야 하며, 주택법령에서 정하지 않은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법 제43조의 4 제2항, 제101조 제2항 제3호).
관리비와 사용료는 실제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입주자와 사용자가 납부함에 반해 장충금은 소유자에게만 납부의무가 있고, 장충금의 징수는 관리비와 구분해 이뤄지며, 그 보관 및 예치도 관리비와 별개의 계좌에서 이뤄진다(시행령 58조 제2항 제1호, 제7항).
이처럼 장충금은 공동주택 구분소유권의 교환 및 사용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서 사용자와 무관한 입주자들의 책임이지만 일단 입주자들이 납부해 적립이 시작되면 입주자들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입주자들에게 임의로 환급할 수 없는 등 여러 제한을 받게 된다. 그런데 공동주택 공용부분 주요시설의 교체 및 보수라는 장충금 적립 목적 내지 필요가 사라진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가 공동주택을 재건축하는 경우다.
판례는 장충금이 관리규약에 규정된 모든 입주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관리단에 총유의 형태로 귀속된다고 한다. 따라서 적립된 장충금의 처분은 관리단 규약에 특별한 정함이 없는 한 관리단의 결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은 재건축조합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상대로 개인계좌에 보관 중이던 특별수선충당금을 넘겨달라며 제기한 소송을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건축조합과 관리단은 구분되며, 관리단이 특별수선충당금을 재건축조합에 양도하기로 하는 결의를 한 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대법원 2004. 5. 14. 선고 2004다11612 판결).
하지만 올해 7월경 서울고등법원은 장충금과 관리비 예치금을 보유하고 있던 동대표들이 이를 재건축조합에 넘겨줘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공동주택이 멸실·철거돼 장충금과 관리비 예치금을 그 당시 소유자들에게 반환하고 관리단이 해산돼야 할 즈음에 이미 재건축 조합이 전체 소유권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0년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재건축으로 이주가 완료된 아파트의 입대의에서 장충금 등을 재건축조합에 인계키로 의결한 것은 무효라고 했다. 관리단이 총유로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관리 및 처분은 입주자 전체 총회 결의에 따라야 하고 입대의는 이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장충금을 입대의가 계속 가져야 하는지, 소유자들에게 나눠줘야 하는지, 재건축조합에 넘겨줘야 하는지, 이를 결정하는 시점은 언제여야 하는지 등이 모두 명확하지 않고 판결들도 혼란스럽게 갈팡질팡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대법원의 잘못이다. 공동주택도 집합건물이므로 집합건물법에 따라 구분소유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관리단이 당연성립하기는 한다. 하지만 장충금은 집합건물법과는 아무런 관련없이 주택법령 및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근거해 징수·보관·적립·사용된다.
장충금의 징수·보관·적립 및 사용이 모두 관리주체와 입대의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임에도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관리단에 총유의 형태로 귀속되고 그 처분 및 관리에는 입주자 전체 총회 결의가 있어야 한다니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입주자 총회의 결의가 있기 전까지는 공동주택 전부가 멸실·철거돼 이미 목적도, 필요도 상실된 장충금을 처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소유자들만이 납부해 궁극적으로 소유자들을 위해 사용하다가 그들에게 반환해야 하는 것이 장충금이라 할지라도 이를 설명하기 위해 ‘관리단’, ‘총유’ 등의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은 과했다. 장충금은 입대의 자산 중 입주자들만의 기여로 적립되고, 입주자들만을 위해 사용되며, 궁극적으로 입주자들에게 반환돼야 할 성격의 자산일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현행 주택법령 및 도시정비법과 관리규약 준칙에 입대의의 소멸(궁극적 해산 및 청산)과 그 권리, 의무의 재건축조합으로의 승계 여부 등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재건축으로 이주가 진행 중인 단지의 관리비는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 신탁등기를 경료받은 재건축조합이 입주자로서 입대의 구성 등에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인지, 관리비 이익잉여금 등은 누구에게 귀속돼야 하는지 등 재건축과 관련한 공공주택 관리 관련 쟁점은 해석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운 실정으로 조속한 입법상 해결책이 수립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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