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공룡이 고성의 지역 브랜드가 된지 오래다.
경남 고성을 간다. 고성의 들머리 배둔에서부터 공룡의 자태가 위용을 자랑한다.
고성은 삼국시대에 소가야의 도읍지다. 사적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성 송학동 고분군에는 총 7기의 고분이 있다. 그 당시 남해안을 지배하던 소가야 왕들의 고분인지라 크기가 참으로 크다. 지금은 장례에도 화장 문화가 대세인지라 흔적을 남기려 하질 않는데, 죽어서도 위용을 자랑하는 무덤이 시절인연이었는가 보다. 고분 옆에 있는 고성박물관에 오면, 삼천년 소가야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숨결이 출렁인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우선 그 지역의 박물관부터 둘러본다. 박물관에 오면 그 도시의 정보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삼한시대 고성 사람들은 하나의 작은 국가로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또는 고자국(古自國)으로 불리어졌다고 한다.
박물관에 오면 세월이 있고 역사가 있다. 삼한시대라는 것은 청동기시대가 끝난 시기부터 삼국시대 이전까지를 말하는 시기라고 하는 것도 박물관에서 확실히 알게 된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그리운 추억이 된다.
다듬이 소리가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고, 탈곡기 소리가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꽃상여가 사라지고, 호롱불이 사라지고, 대장간이 사라졌다. 우체통이 사라져가니 연애편지도 사라져가고, 방앗간이 사라지니 외상술도 없어졌다.
하던 지랄도 덕석 펴면 안 한다고 덕석도 없어지고, 입은 채로 오줌 싸도 옷이 젖지 않는다고 소금 얻을 필요 없어 키도 사라졌다.
집에서 아이 낳을 일이 없어 금줄도 사라지고, 은행마다 내 돈 쓰라고 난리니 전당포도 사라져가고, 선거철이 돌아와도 고무신도 주질 않아 고무신도 사라졌다. 원터치로 빨래가 되니 빨래터가 없어지고, 원터치로 물이 나오니 공동 우물도 사라졌다.
진화되어가는 역사 앞에 박물관이 없으면 뉘라서 그 옛날 어머니의 재봉틀을 알리요. 무딘 칼을 날선 칼로 만들던 ‘칼 가시오’ 할아버지는 그 험한 삼도천을 건너가신 지 오래다.
청동기시대에 수장의 무덤이라는 고인돌이 고성군 14개 읍면에 66개가 분포되어 있다고 알려주는 고성박물관. 고대 고성 사람들의 내세관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 여겨 사후에 하늘로 올라간다고 길을 안내할 43마리의 새를 새겨놓은 새무늬청동기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한국학의 거장 고(故) 김열규의 발자취가 고성박물관에 있다.
한국문학과 한국문화, 민속학 연구에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글쓰기를 통해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아 온 국문학자로 120여권의 저서를 남긴 분이다.
수남동 앞바다에서 ‘내 열 일곱 살이 소금으로 우는 바다’라고 한 서벌 시인도 고성사람이었지. 순리즉유, 종욕유위(順理則裕, 從欲惟危)라  순리를 따르면 마음에 여유가 있고, 욕심을 따르면 위태롭다고 도리로 살아온 사람들이 고성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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