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일기

 

 

입대의 최 병 용 회장
경기 청평 삼성쉐르빌

2년 전 청평면 주민자치위원 공모가 있어 지원했다. 주민자치위원은 주민들 중 25명을 선발해 무보수 봉사자로서 주민자치센터 운영, 주민의 문화·복지·편익 증진, 주민자치활동 강화, 지역공동체 형성 등에 관한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다.
청평에 둥지를 튼 지 8년째여서 청평면의 살림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고 싶었고, 청평면을 위해 봉사하고, 삼성쉐르빌 입주자대표로서 아파트의 입장도 대변하며 청평에 사는 많은 분들과 교류도 하고 싶어 지원했다. 하지만 선정되지 못했다. 심사결과가 너무 석연치 않아 심사위원장인 부면장을 찾아갔다. “자치위원에 신청했는데 탈락됐다. 선발기준이 무엇이고 왜 탈락했는지 과정을 알고 싶다”라고 했더니 “심사위원들의 고유 권한이라 과정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정보공개를 통해서라도 알아보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리더십, 성실성, 봉사정신이 선발기준”이라고 했다.
“저는 10년 동안 장교로 군 생활을 했고, 20년간 공직에 근무하며 재직기간 중 성실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아 각종 표창장과 상장도 수상했다는 기록을 지원 서류에 다 기재했는데 리더십, 성실성, 봉사정신이 부족해 탈락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세가지 외에 인품도 고려해 선발했다”는 대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인품이요? 저를 면접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 인품을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평가해 인품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신 거죠?”라고 하자 “심사위원들의 고유권한이고 탈락했다면 탈락한 거지 뭘 그리 꼬치꼬치 따지냐?”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그동안 삼성쉐르빌을 대변하는 민원을 청평면과 가평군에 많이 넣다보니 그들 사이에 ‘골치 아픈 사람’으로 인식이 돼 일부러 선발하지 않았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삼성쉐르빌에서 총 3명이 지원했는데 객관적인 스펙이 많이 부족한 가평출신 주부 1명을 선발해 구색을 맞춘 것 같았다.
청평의 한 지식인에게 이야기하자 “아마 그들은 새로운 물이 흘러 들어오는 것이 두려워 일부러 선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듯이 자기들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이게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라는 말이 자치위원 탈락의 진짜 원인 같았다.
‘동종교배 퇴화의 법칙’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19세기 영국 목축업자가 양을 기르면서 어떻게 하면 수입을 극대화시킬까 고민을 하다 양의 품종을 개량하기 위해 우수한 품종의 양들을 어미, 자식, 형제를 안 가리고 동종교배시켜 최우수 양을 만들어냈고 마지막엔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그야말로 초특급 울트라양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 양들에게 스크래피라고 하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결국 양들은 전멸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20여 년 전 전국을 휩쓸던 ‘세진컴퓨터’란 컴퓨터 유통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에 면접을 보러간 한 지인은 면접 시 군대식으로 대답을 요구하고 임원들이 회장의 부름에 큰소리로 대답하며 부동자세로 지시사항을 듣는 모습을 보고 그 회사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해 면접장을 박차고 나왔다고 했다. 결국 세진컴퓨터는 몇 년 못가 바로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아예 잊힌 기업이 됐다.
한 사람의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은 겉으로는 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외부의 변화에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기업이나 조직도 남의 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폐쇄된 사회는 쇠퇴하게 마련인 것이다. 기업이든 조직이든 다양한 요소들이 얽히고설킬 때 강한 기업이 되고 강한 사회가 된다는 의미다. 민주주의가 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폐쇄된 조직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아이디어나 창의력 역시 다양한 사람 다양한 생각이 서로 부대끼면서 나온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야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조직의 책임자가 순혈주의를 고집하거나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만을 주위에 둔다면 조직은 서서히 퇴화하게 마련이다. 반대로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주역이 된 이유를 학자들은 잡종 강세를 든다. 미국을 세운 사람들이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이고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일에 종사하던 사람들끼리의 결혼으로 잡종 강세가 나타나고 결국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청평면이 ‘동종교배 퇴화의 법칙’이 아닌 ‘잡종교배’를 통해 강한 마을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