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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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경제가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발 리스크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수출 부진이 지속되고 청년층의 실업률이 10%에 육박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로 열린 한 정책세미나에서는 “최근 우리 경제지표가 20년 전 일본을 쏙 빼닮았다”는 주장과 함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노동개혁은 물론 나라 빚이 늘지 않도록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다. 실제로 올 상반기에만 문 닫은 자영업자가 10만여 명에 이르고 긴 불황으로 술·담배 소비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래다. 흔히들 어린이는 꿈이요 청소년은 미래이고 사람은 누구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간다고 말들을 한다. 과연 그럴까. 얼마 전 미래창조과학부는 ‘미래이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저출산·초고령화 사회, 소득 양극화, 특히 젊은 세대의 인생에 대한 불안감이 10년 뒤인 2025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가 하면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20대 이상 810명을 대상으로 ‘계층 상승 사다리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 응답자의 81%가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작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 국민 10명 중 9명은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심각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고 믿는 사회는 그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
어디 그 뿐이랴.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230만여 명, ‘열정 페이’라는 이름의 임금착취, ‘고용절벽’에 부딪쳐 ‘취업낭인’ ‘구직단념자’ ‘캥거루족’으로 전락한 젊은이들의 좌절과 방황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사실 청년실업 문제는 사무자동화나 정보기술산업의 발전 등으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의 패턴이 형성되면서 나타난 전 세계적인 추세로서 시대적인 고질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악의 실적을 내고도 흥청대는 공기업 연봉 잔치, 대규모 적자에도 아랑곳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강성노조, 쌈짓돈이 돼버린 공무원 성과금, 특권층의 ‘현대판 음서제’ 논란 등등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득권층의 온갖 남세스런 ‘갑질’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물론 ‘노인 연령 상향 조정’을 들고 나온 노인단체도 있고 ‘국회의원답게 살기’를 다짐하는 선량들도 있으며 연봉의 일정액을 반납하고 나서는 CEO 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열심히 노력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은 순전히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2030세대는 어느새 3포, 5포, 7포 세대를 넘어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은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지난 시절 한때 취업난에 시달리다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청춘들을 ‘88만원 세대’라 부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운 고용절벽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판에 고관대작들의 ‘뒷구멍 취업’을 지켜보는 젊은이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하여 현실이 곧 지옥이라는 뜻을 가진 ‘헬(hell)조선’ ‘망한민국’ ‘지옥불반도’ ‘개한민국’ 심지어 탈한국을 꿈꾸며 이민계(移民契)까지 만드는 젊은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 세대보다 잘 먹고 좋은 환경에서 자랐지 않느냐’는 식의 ‘꼰대 노릇’도 버려야 한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는 기성세대는 한마디로 ‘노답’이다. 물론 기성세대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만 졸업하면 정규직 일자리를 골라서 차지했던 그런 좋은 시절도 누려보지 않았던가.
이제 이 땅의 모든 기성세대는 노동개혁이든 재벌개혁이든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양보한다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젊은층 또한 비록 오늘의 현실이 고달프더라도 진취적 도전정신만은 간직하고 살아가야 한다.
철강왕 카네기는 불우했던 젊은 시절 “밀물은 반드시 들어오리라. 그날 나는 바다로 나아가리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시인 브라우닝도 ‘최고의 날은 미래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은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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