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오 민 석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2010년경으로 기억한다. 서울시장 및 시의원을 선출하는 6·2지방선거 당시부터 무상급식에 관한 논란이 촉발됐었다. 찬반양론이 치열했고, 서울시 집행부와 시의회는 한 치의 양보나 타협도 없이 격돌했다. 결국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시행에 관한 주민투표가 무산된데 따른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후로도 무상급식이라는 화두는 정치권의 편 가르기와 정파적 이해관계에 악용되면서 우리나라 복지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치인들끼리의 싸움에 무상급식은 6년 여간 중단과 반복을 되풀이했고, 앞으로도 정치지형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있다.
최근에도 경상남도와 도 교육청은 도의 무상급식 예산지원에 따른 감사를 도 교육청이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고, 그 와중에 무상급식은 중단됐다. 무상급식이 아니면 가정형편으로 점심을 굶거나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릴 적 먹거리로 설움을 겪어 봤던 필자는 어른들 싸움 와중에 밥 한 끼로 눈치봐야 하는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경북 경산시의 H아파트에서는 방학 기간 맞벌이 부부나 결손가정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수년 째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30가구에 가까운 가정의 아동들이 혜택을 입고 있다. 무상급식이 시행되더라도 학교를 가지 않는 방학 동안에는 우리 주변에서 결식아동들의 한 끼 식사가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는 방학 중 부모들이 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불규칙한 어린이들의 급식을 해결하기 위해 식재료와 조리사 등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H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프로그램에 신청해 점심을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하는 단지 내 아동들의 한 끼 식사를 여름과 겨울방학 동안 5년째 제공 중이다. 더해 관리사무소장과 관리사무소 직원들 및 단지 내 입주자들의 재능기부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취미활동 및 창의적 학습기회를 제공하는 체험교실도 병행한다. 한 끼 밥에 더해 풍선아트, 독서 및 체육활동, 종이접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한 애정과 관심이 아이들에게 전해진다는 말에 내 가슴까지 따듯해졌다. 
공동주택 관리업무가 얼마나 방대하고 복잡한 지는 해본 사람만이 안다. 관리사무소장을 비롯한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입주자들의 관리비 절감을 위해 최소한의 인력으로 벅찬 업무를 꾸역 꾸역 수행한다. 그렇다고 이들에 대한 급여와 휴가 등 대우가 훌륭한 것도 아니다. 정해진 업무만 수행하기도 바쁜 와중에 이런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알아보고,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상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한 끼를 챙겨줘야 할 아동이 얼마나 되는지, 그 가정의 형편은 어떤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동들이 꼬박 꼬박 찾아오는지, 와서 제대로 식사를 하고는 있는지 등을 식사일지까지 만들어 세세하게 챙기는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마음은 엄마의 마음, 바로 그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명칭도 ‘엄마손 밥상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내가 잘 챙기지 못하는 자녀를 함께 품어주는 이러한 활동이 공동체 의식의 발로이며, 공동체 활성화 사업이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입주자 자녀들의 한 끼 식사까지 고민하고, 이에 대한 고마움이 쌓인 입주자들이 관리사무소 업무와 고충에 대한 이해나 협조를 다짐하는 순간 서로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도 아이들 밥을 챙겨주느라 애쓰는데 그 알량한 권력으로 굶는 아이 하나 없게 만들지 못할 것이라면 도대체 정치는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가?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부녀회, 경로회 등과 관할 자치단체도 관리사무소의 선행에 당연히 힘을 보태고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