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5)

서   정   호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장·경영학박사

 

요즘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단어가 있다. ‘갑(甲)질’. 한 포털사이트의 트렌드 지식사전에 등록되기까지 했는데 그 의미가 다음과 같이 정의돼 있다.
“갑을(甲乙) 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
지난해 가을, 영화배우 김부선 씨의 난방비리 사건 폭로를 계기로 공동주택 관리실태가 집중 조명됐다.
그 와중에 입주민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경비원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공동주택에서 자행되는 ‘갑질’도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분신자살을 기도한 경비원이 결국 숨졌다는 소식을 접한 날 아침, 정부에서 주택관리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느낀 그 참담했던 심정이 아직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2014년 9월 이래 언론에 보도된 입주민의 아파트 경비원 폭언·폭행사건은 굵직하게 드러난 것만도 10여 건이다. 보도 제목만 봐도 낯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아들뻘 되는 입주민에 멱살 잡히고 차이고/ 입주민이 ‘왜 날 쳐다봐’ 마구잡이 주먹질/ 경비원 폭행, 코뼈 내려앉을 정도로…대체 왜?/ 20대 아파트 남 30대 경비원이 인사 안한다고 폭행/ 아파트 경비원에 욕하고 침 뱉고 상습 행패 40대 구속’

사람이 사는 곳에 다툼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다툼이 아니라 일방의 횡포, 즉 ‘갑질’에 불과하기에 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배려와 존중은 어디로 갔는가?
인자은측 조차불리(仁慈隱惻 造次弗離). 어질고 사랑하며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은 잠깐이라도 떠나보내서는 안 된다는 이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요즘이다.
아이들에게 경비 아저씨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공손하게 인사드리라고 가르치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다. 우편물을 전달해주기 위해 직접 가구를 방문하는 경비원을 위해 음료수 한 잔을 준비해놓는 일은 굳이 ‘예절’이라고 칭할 수도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명절 연휴임에도 경비 업무를 보는 수고로움에 감사하며 함께 명절 음식을 나눠 먹는 것도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각박해져가는 세상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미풍양속이 사라져가고 사람들의 마음도 무디어져 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함께 공동주택 관리를 해야 하는 입주민, 관리주체인 주택관리업자와 관리사무소장, 경비·청소 등의 용역업체는 서로 반대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는 갑(甲)과 을(乙)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에 모여 가족처럼 살 수 있는 곳이다.
배려심이 많은 사람, 약자를 도와주는 사람, 너그러운 사람, 함께 기쁨을 나눌 줄 아는 사람, 아파트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아름다운 공간이 돼야 한다. 한 울타리 안에서 한 길을 걷는 사람들과 담소(談笑)를 나누는 정겨운 공간이 돼야 한다.
오늘 난 서둘러 퇴근하려 한다. 함께 하는 이웃이 있는 행복한 삶터, 아파트로!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