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
laddersy@hanmail.net

섬을 찾는 것은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길을 만나는 것이다. 그 끝에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여유로운 숲길에 서서

바다가 갈라져 섬이 연결되는 모습을 모세의 기적이라고 한다. 수도권에는 실미도와 제부도, 선재도 목섬의 신비한 현상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제주도 서귀포의 서건도나 남해안 통영의 소매물도, 창원의 동섬, 고흥의 우도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며, 진도는 바닷길 축제를 매년 열기도 한다. 서해안은 부안의 하섬과 서산 웅도, 보령 무창포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들은 해수면이 낮아질 때 주변보다 해저지형이 높은 곳이 해수면 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보통은 섬 주변의 한 곳 정도에서 이런 현상들이 관측되지만 면적이 3.03㎢, 해안선길이 14.4㎞인 작은 섬 소야도는 세 곳에서나 발견된다.

혼자 외롭지 않은 섬. 나룻개 선착장에서 마을로 가는 언덕 능선에 오르면 발밑으로 작은 마을인 텃골이 보인다. 바닷물이 빠질 때면 장군바위가 있는 창부섬까지 연결된다.
큰마을로 들어서면 왼쪽 방파제로 연결된 가섬에서도 밀물 때면 간데섬과 물프레섬으로 이어진다. 산으로 둘러싸인 죽노골은 작은 해변이다. 이곳도 물이 빠지면 뒷목섬까지 길이 난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들이다. 잠시 바다가 내어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길. 그 길을 걸으며 소라나 고동, 조개 등을 채취하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소야도는 선착장에서 마을 공영버스가 배 시간에 맞춰 떼뿌르해수욕장, 큰마을을 오간다.
떼뿌르해수욕장은 아담한 백사장이 물이 빠질 때면 넓은 갯벌과 합류하는 소야도의 대표적 해변이다. 잔디가 깔린 야영장이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캠핑하기에 좋은 곳이다. 세면장과 샤워장 등 깨끗한 시설들이 갖춰져 알음알음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섬여행은 주변의 작은 소로를 걸으며 이곳저곳 섬만이 갖고 있는 특징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또는 높은 곳에 올라 먼 바다와 이웃한 섬들의 풍경도 보며 자기의 내면도 찬찬히 살펴보는 여유로운 시간이 있다면 섬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선착장에서 출발해 마배끝에서 시작되는 국사봉(143m)산행과 죽노골 해변, 떼뿌르해수욕장, 왕재산을 잇는 트레킹은 섬 전체를 조망하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아 자연이 살아 있는 울창한 소나무숲길. 방목한 흑염소들이 숲으로 달아나는 모습. 섬과 섬이 연결되는 모습들. 자연의 천이가 잘 진행된 숲길 곳곳에는 시원한 바람이 머물러 있다.
새로 조성된 왕재산(143.8m) 둘레길은 왕재산을 중심으로 큰마을에서 진대끝, 반도끝, 막끝, 떼뿌르해수욕장까지 힘들지 않고 산허리를 걸으며 바다와 숲에 쌓여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코스이다. 소요시간은 천천히 2시간정도면 된다. 
양지에는 길옆으로 고사리가 푸른 초지처럼 펼쳐지고 음지에는 큰천남성이 무리지어 자란다. 큰천남성은 제주도, 남해안과 서해안 섬 등에서 볼 수 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간다. “제가끔 서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닐까” 어느 날 마주했던 광화문 빌딩 벽에 걸린 정희성시인의 ‘숲’이라는 시를 잠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시간. 그래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우리들은 왜 숲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파도소리가 밀려오다 멀어져 간다. 

내면의 길을 찾아서

파도소리를 듣다 일찍 잠이 들었다. 파도소리도 자장가다. 파도가 밀려간 자정에서야 잠에서 깨었다. “냉장고에서 버티던 수박 덩어리를 끌어내어 / 몸에 좋을 거라는 수박씨를 빠드득 깨물다가 / 지나간 사람 / 그 아픔을 기억해낸다 / 새벽을 가르는 그 소리만큼 되 살아 난다”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늦은 밤 수박을 먹다 막 떠오르는 글귀라며 지인이 문자를 보내왔다. 어두운 밤바다에는 매미 한 마리 아주 가늘게 쥐어짜는 울음 흔적뿐이다.
다시 잠이 들고 깨었다. 아침 일찍 다녀왔던 죽노골을 점심 무렵 다시 찾는다. 떼뿌르해수욕장에서 산허리를 끼고 15분정도 걸으면 죽노골이 나온다. 고운 모래가 펼쳐진 해변이다. 아침에는 바닷물에 찰랑이던 뒷목섬이 오후에는 물이 빠져 하얀 해변으로 엽서의 그림 같이 이어졌다.

모래언덕을 기어가며 제 길을 내고 있는 순비기나무도 한창 꽃을 피워낸다. 순비기나무의 이름은 해녀들이 숨을 쉴 때 내는 ‘숨비소리’에서 유래됐다고도 하는데, 동해안의 구룡포에서 남해안을 거쳐 제주도를 포함,남서부 섬지방의 바닷가에서 만날 수 있는 관목이다. 해당화와 어우러진 순비기나무의 자줏빛 꽃들이 낮게 깔려 몽환적이다. 꽃말이 그리움이다.
여행을 다녀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영화속 수인과 경희. 지환이 미묘한 사랑의 감정이 교차하던 장소. 세 사람의 엇갈리는 우정과 풋풋한 사랑의 감정들을 그려낸 영화 연애소설의 촬영지라는 것이 우연이었을까. 섬 여행은 척박한 환경과 아름다운 자연속에 나를 맡기는 연습이기도 하다. 인생이라는 길이 섬의 길에서 교차돼지며 내면의 길을 만들어가는 여행.
소야도는 얼마 전 만해도 지척에 있는 덕적도에서 고기잡이 작은 배를 타고 들어 가야 하는 섬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부두를 조성해 2014년부터는 인천연안여객터미널이나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여객선들이 소야도 선착장을 거쳐 바로 눈앞에 보이는 덕적도에 입항한다. 차량을 싣고 간다면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출발 하는 것이 좋다.

여행정보

-고려고속훼리 (032-884-4968)
-대부해운(032-886-7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