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눈 뜨기가 겁이 나는 첫사랑처럼 후끈거리는 여름. 마지막 사랑처럼 손을 놓지 않고 뻗어가는 고마니풀이 헉헉거리는 여름.
온통 피를 칠갑하고 산발한 머리카락이 말초혈관의 뿌리를 흔들어대던 납량특집도 옛날이야기, 체온이 직접 하강하는 바다로 간다.
비주얼의 반란, 로맨틱의 쿠데타, 가슴이 콩콩거리는 사랑의 계절이다.
바다에 오는 이유가 꼭 무더위 때문만은 아니리라. 바다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좋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해도 좋고, 충전도 좋고, 결심도 좋고, 포기도 좋고, 도약도 좋고, 사랑도 좋다.
패거리도 없고 왕따도 없는 바다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고향도, 학벌도, 성분도, 직장도, 월급도 묻지 않는다.
바다는 어디에서 온 강이냐고 묻지도 않고, 어디에서 온 개울이냐고 따지지도 않으며, 어디에서 온 사람인가는 더더욱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오로지 품을 뿐이다.
그 어떤 용솟음치는 붉은 욕망도 바다에 오면 푸르게 해독이 된다.
해조음의 풍류로 열려 있는 바다는 누구나, 언제나, 대자유를 선사한다. 알프스의 설원이나 알래스카의 빙하보다 바다에서의 물장구는 시원한 활엽수가 되고, 청량한 침엽수가 된다. 옷도 벗어 던지고, 생각도 벗어 던지고, 모든 걸 버린 맨살의 자유는 채점이 필요 없는 흥겨운  갈라쇼다.
해마다 바다로, 세계로 해양스포츠축제가 열리고 있는 거제 구조라 해수욕장이다.
올해도 작년에 왔던 각설이마냥 그 팬션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13명이 여장을 풀어놓고 바다에 몸을 담근다. 1년에 한번 여름휴가 때에 온 가족이 함께하는 행사며 내가 대장이다.
아이들의 물장구가 하늘로 올라가고 햇살은 아래로 내려온다.
백사장에는 벗을수록 놀라운 사람들이 놀랍도록 많다. 구조라의 모래알은 비단처럼 발바닥을 휘감아 돈다.
여름을 준비한 아쿠아삭스 L사이즈도 벗어 던지고 나는 맨발이 좋다.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을 넘어온 바람이 물결에 파도가 된다.
원시의 욕망으로 꿈틀대는 바다에서 벗은 사람들을 보면, 맨발의 무소유가 신나는 물장구가 되고, 맨손의 무소유가 손을 잡는 사랑이 되며, 맨몸의 무소유가 하늘과 바다를 끌어안는 행복이 된다.
젊음이 넘쳐나는 곳, 모두가 하나 되는 해수욕장은 하늘이 점지한 아름다움의 땅, 낭만의 땅, 사랑의 땅이다.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굴 걸그룹이, 보이그룹이 지천으로 돌아온 구조라다.
은혜, 은총, 긍휼, 자비, 인애로 함께 펼쳐지는 헤세드요, 계율과 율법, 규칙과 약속으로 함께 묶여지는 베리트다. 
바다는 푸르고 모래는 하얀 청백의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이 되어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을 부른다. 환희와 인류애의 메시지를 담은 희망가로 모든 인간이 하나가 되는 환희의 송가 4악장이 절정이다.
삶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 섞이고 섞여도 푸른 바다.
각각의 응어리진 것들을 녹이고 녹여도 푸른 바다.
분별의 선택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는 여름 바다는 원색의 바다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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