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그녀는 우리 가족의 숨이었고 삶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핀’의 작가로 유명한 미국의 마크트웨인이 아내가 죽었을 때 한 말이다.
 그는 정규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인쇄공으로 일하다가 증기선을 보면서 선장이 되고 싶어 노력한 끝에 선장일도 해보았다. 은을 캐는 광부로 일하다가 신문기자가 되어 칼럼을 쓰면서 칼럼니스트로 인기를 얻었다. 베스트셀러를 내면서 작가로서 대성공을 거둔다. 그러다가 제 18대 대통령인 Ulysses S. Grant의 회고록을 출판하면서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됐다.
대체로 예기치 않은 행운이 다가와 크게 성공을 거둔 다음에는 조금 쉬어가며 성장의 속도를 줄이는 게 인생을 잘 관리하는 법이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마크트웨인은 타자기에 투자해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어도 상용화에 실패함으로써 부를 누리던 날들이 물 건너갔다. 그들이 행복을 누리던 시간은 그저 15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아내를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강연을 위해 여행을 하다가 만난 친구의 여동생을 소개받아 결혼했다. 부유한 집에서 교육을 잘 받고 자란 규수 올리비아는 품위 있는 미인이었고 그들은 하트포트에 화려한 3층 저택을 지어 살면서 꾸민 집은 고급스럽고 세련됐다. 그들이 누리고 살다가 나갔지만 지금은 작가박물관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일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하게 지어졌다. 딸 셋과 부부인 가족들은 이 공간을 아주 만족하며 즐겼다. 본인은 즐겨하는 당구를 하기 위해 따로 당구대가 있는 공간도 마련해 친구들을 주기적으로 불러 당구치기를 즐기기도 했다. 딸 셋의 교육은 가정교사에 의해 이뤄졌다.
1870년대에 작가의 생활이 이 정도라면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핀’이 이 집에서 집필됐고 그로부터 15년 후에 그는 안락한 하트포트 집의 모든 것을 잃었다. 결국 유럽으로 건너가 3년만에 출판사도 파산되고 만다. 나는 이 글을 읽다가 잠시 멈춰 생각했다.
내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으로 실려갔다가 한달만에 퇴원하고 집에 왔을 때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나서이다.
“나는 이 집의 가장인데 당신이 없으니 아무 것도 아니던데 무엇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왔으니 순전히 껍데기로 살았던 거야” 어찌보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살았다는 증언이기도 하다. 분신인듯 맡기고 의지하지 않았는가 싶어서 고맙기도 했지만, 조금 무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둘이 하나가 돼야 돌아가던 우리집이었는데 그 사건 이후 나는 남편에게 알 것은 알고 맡기라고 재정문제며 집안의 대소사를 일일이 보고해줬다.
아이들의 친구는 누구이며 무엇하는 집안의 자식인가도 말해주고, 내 친구는 누구이며 주로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도 알려주었다. 표현은 안했지만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는 내용은 ‘숨과 삶’이었다는 마크트웨인의 표현과 의미가 같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부가 서로 ‘숨과 삶’이란 표현을 할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앞으로 120세가 평균 수명이라는 설이 나도는데 기나긴 인생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철학이 재정비될 기미가 보인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인가. 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 것인가. 우리 지구에서 가장 먼 별인 명왕성의 지표가 사진으로 찍혀 보여진다. 화성에 갈 사람을 모집했는데 1,000여 명이 접수를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모두가 지구와 멀리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듣지만, 이 방에서 저 방이 멀고 자기 동네 사람들끼리 삶을 죽음으로 몰고간 사건도 벌어졌다. 아직 미해결이지만 비극적 사건이다. 누가 됐든 서로에게 서로가 ‘숨과 삶’이 되는 인연으로 마감하고 싶은데 너무나 큰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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