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아파트라는 서구식 주거문화를 우리 식으로 맞게 응용해 국토 구석구석에까지 보급하고 완벽하리만치 적응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수천년 동안 수평적 주거공간에 길들여져 온 민족이 수직적 주거공간을 받아들여 순식간에 체화한 걸 보면 창의력과 지혜가 넘치는 민족이란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아파트라는 수직적 주거공간에 어느 나라에서도 시도하지 못했던 바닥난방을 이뤄내고 전통 주거의 장점을 결합시켜 놓으니, 이제는 역으로 수출까지 하는 세계적 주거명품이자 자랑거리가 됐다.
아파트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자리 잡은 지난 수십년간 주거공간이란 개념보다 투자대상이란 생각이 훨씬 강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소비재 중 쓰면 쓸수록 가격이 올라가는 건 아파트 밖에 없을 것이다. 건물도 수명이 있다. 오래 될수록 남은 수명이 짧아지는 법인데 그에 반비례해 가격이 오르니 너도나도 뛰어드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입주하는 순간부터 ‘얼마나 올랐을까?’ 궁금해 하고, 10년만 지나도 ‘언제쯤 재건축될까?’를 계산했으니 대한민국 아파트의 역사는 ‘짓고 허물기’의 반복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아파트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 변하고 있다. 땅과 아파트를 사두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깨지면서 ‘투기대상’이 아닌 ‘주거공간’ 본연의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아파트 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다. 동대표 얼굴도 모르고 관리사무소 위치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입주민들이 이젠 아파트 운영은 물론 관리비 구성과 지출에까지 관심을 보인다. 당연한 일이다. ‘돈’으로만 여겼던 아파트를 ‘집’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정상의식이 회복돼 가는 것이다.
한국의 주택정책은 오로지 건설과 보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최초의 관련법이 1972년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이란 것만 봐도 성격을 알 수 있다. 먹을 것도 잠잘 곳도 마땅치 않던 시절 폐허의 땅에서 급격한 고도성장을 이뤄냈으나 도시의 주거문제는 극한 상황으로 몰렸다. 집을 최대한 빨리 짓고 최대한 빨리 보급하는 게 발등의 불이었으므로 부실시공은 물론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조차 관심 둘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대한민국이 이제 세계유수의 쟁쟁한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머리칼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팔던 나라가 반도체와 전자제품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IT강국이 되고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대국이 됐다.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공동주택에도 혁명적 변화의 물꼬가 트였다. ‘공동주택관리법’이 지난 24일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관련기사 1면)
주택건설촉진법 이후 2003년 주택법이 제정된 지 12년 만에 ‘건설과 보급의 시대’에서 ‘관리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선포하는 축포를 쏘아올린 것이다. 현장과 함께 호흡하는 본지 역시 이 쾌거를 두 손 들어 환영하며 경축한다.
하지만 아직은 마냥 기뻐할 때가 아니다. 보완해야 할 점이 많고 무엇보다 관리현장에 대한 입주민의 불신과 언론의 왜곡 역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법 제정은 큰 의미를 내포한 힘찬 첫 발걸음이다. 주택관리사 등의 현장종사자와 관련 공무원 등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며 무엇보다 국민의 대다수인 입주민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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