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서구 문명의 요람, 민주주의 발상국, 파르테논 신전, 제우스 신과 헤라 여신, 소크라테스, 올림픽 발상지, 마라톤, 에게해의 일몰 등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수도 없이 많다.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모델인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의 민주주의 산실은 그들이 시장 또는 광장이라 부르던 아고라(Agora)였다. 시민들은 그곳에 모여 민회를 열고 국가 중대사를 투표로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약 2,500년 전의 얘기다. 그토록 찬란한 고대 문명을 자랑했던 나라의 형편이 요즘 말이 아니다. 디폴트와 그렉시트의 기로에 선 채 긴축요구안을 제시한 국제 채권단을 상대로 곡예 외교를 펼쳤던 그리스는 2주만에 3차 구제금융을 이끌어내는 데 일단은 성공했다.
이로써 멀쩡한 차림의 시민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러 다니고 ‘71년 IMF 역사상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운데 사상 최초로 채무를 갚지 못한 나라’라는 불명예까지 뒤집어썼던 그리스 사태는 마침내 출구를 찾은 셈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앞길은 멀고도 험난하게만 느껴진다. 그동안 이 나라의 파산 원인을 두고 ‘복지병이다’ ‘부패와 탈세의 문제다’ 등등 말들이 많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기에 영합해온 정치의 적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리스의 비극은 앞 세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뿐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책임도 크다 할 것이다. 채권단의 긴축요구안을 ‘국민투표’를 통해 완강히 거부했기에 하는 말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사람들이 권리 못지않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데 있다. 그런데 남의 돈을 빌려다 흔전만전 써놓고는 ‘부채탕감’의 요행수를 노리고 ‘배 째라’식으로 국제사회를 우롱하는 것은 직접민주주의의 퇴행이요, 플라톤이 우려했던 ‘중우정치(衆愚政治)’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얼마 전 공무원연금 개혁이 맹탕으로 끝났는가 하면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4대 개혁은 계속 겉돌고만 있다. 그래선지 요즘 SNS에서는 ‘그리스 사태 남의 일 아니다’ ‘국운이 쇠하고 있다’는 등의 잿빛 정보가 봇물을 이룬다. 하긴 청년실업, 저출산, 고령화, 무상복지, 가계부채 등 걱정되는 부문이 어디 한둘인가.
최근 1975년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에 실렸던 논문이라는 소개글을 받았다. ‘일본의 자살’이라는 제목 아래 일군(一群)의 지식인 그룹이 공동집필했다는데 이들은 동서고금 제(諸) 문명을 분석한 결과 모든 국가가 외적(外敵) 보다는 내부요인 때문에 스스로 붕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들이 찾아낸 ‘국가자살’의 공통요인은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었다. 이 논문은 로마제국의 몰락 원인을 ‘빵’과 ‘서커스’로 요약했다. 여기서 빵은 무상복지를, 서커스는 포퓰리즘을 의미한다. 대중이 권리만 주장하고 지배계층이 대중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할 때 그 사회는 ‘자살코스’로 접어든다는 게 이 논문의 요지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정치나 경제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경제이론 중에 ‘보몰의 병폐’라는 게 있다. 경제가 성숙될수록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데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이 제조업보다 낮기 때문에 ‘고용 없는 성장’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한국 경제가 지금 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정치는 또 어떤가. 19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총 1만3,215건의 법안을 발의했으나 이 가운데 원안 통과 또는 수정 처리된 법안은 6.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회가 행정부의 무능을 보완하기는커녕 국정 혼선만 가중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 과반수의 삶의 질이 걸려 있는 ‘공동주택관리법’이 지금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현실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이 밖에도 그리스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할 이유는 많다. 물론 복지는 중요하지만 나랏돈의 한도 내에서 점진적으로 늘려나가야 하고 공무원 수를 줄여 공무원연금 고갈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토록 해야 한다. 또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탈세를 뿌리 뽑아야 하며 특히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및 각종 비리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의 근간이 되는 제조업의 육성과 발전에 정책의 중점을 둬야 한다. ‘대중영합주의 정치를 편 그리스 정치권이 국가부도 사태를 부른 주범이라면 여기에 중독된 국민이 공범인 것’이 그리스 사태의 본질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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