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본존불


본존불은 연꽃잎을 엎어 놓은 화대석과 팔각 중대석, 연꽃을 위로 떠받드는 상대석이 갖춰진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데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살포시 땅을 짚어 부처의 영광을 증명함으로써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연화대좌는 높이 1.6m, 기단 최하부는 직경 3.7m이며 본존불의 높이는 3.4m다.
통일 이전의 부처들이 주로 입상으로 다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과는 달리 석굴암의 본존불은 높은 단위에 앉아 우아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지혜와 능력이 극치에 달한 승리자의 모습이다. 본존불은 성냄도 없고 미소도 없으나 명상과 깊은 침묵이 감도는 무(無)의 세계를 만들어 범인이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위엄이 흐른다. 인공적인 부자연스러움 없이 부드럽게 넘치는 생명력을 표현한 어깨선, 가부좌한 두 다리와 무릎, 두 팔과 손, 반쯤 내린 눈, 온화한 눈썹, 양미간에 서려 있는 슬기로움, 자애로운 입가, 그리고 백호 이 모든 선들이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돌 위에 마치 얇은 천의를 걸친 듯 옷 주름도 아름답게 조각됐다.
본존불 뒤 벽에 깊숙이 새겨놓은 소박하고도 빼어난 연화문 광배는 본존불의 영광을 드러낸다. 광배를 불상에 직접 붙이는 일반적인 방법과는 달리 간격을 두고 멀리 배치해 더 입체적인 조화를 느끼게 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광배의 둘레를 돌아가며 장식한 연꽃잎을 위로 올라갈수록 크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작게 한 것이다. 이는 아래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착시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불두의 크기가 몸의 크기에 비해 크게 만들어진 것도 이와 같은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또한 본존불은 주실의 한가운데에 자리하지 않고 뒤로 약간 물러난 위치에 있다. 이는 앞을 향해 전진하는 듯한 동적인 이미지의 본존불을 만든다. 만약 본존불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다면 주실이 비좁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신비로움을 가득 간직한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그런데 1913년 중수 때 비도와 본존불 사이에 있는 좌우 돌기둥을 연결하는 아치형의 양석(梁石)을 가로질러 놓아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는 본존불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이 본존불이 석가모니불이냐 아미타불이냐 하는 판단을 두고 서로 다른 견해가 있으나 우선 석가모니불의 특징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는 점, 둘째, 본존불 주위에 십대 제자가 있고 문수와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다는 점, 셋째,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의 현장스님이 부다가야에서 본 석가모니성도상이 당나라 척도로 폭 11.8척, 높이 13.2척이라고 ‘대당서역기’에 적고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석가모니불로 판단하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수광전’이라는 현판 등이 있었던 것은 당시 유행하던 아미타 신앙의 요소를 받아들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석불사 대불

그대 분명/ 천년을 살아 있는// 둥근 미소/ 은근한 눈빛에/ 화들짝 놀란 나는/ 절로 그대 발아래/ 무릎 꿇고 엎드려// 재발, 재발 염원하는/ 그것은 나의 마지막/ 구결(口訣)이었네

석불사 석굴
-유희좌 보살상

그대 무얼 그리/ 골몰 하시는가// 한손을 무릎에 집고/ 또 한손으로 목을 받쳐/ 지그시 눈을감고 삼매에 든 그대// 지금도 중생을 위한/ 큰 골몰하고 계시는가//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닌/ 아! 천년을 지나도 변치 않는/ 신비한 그 모습에 취한// 내 하루가 온통/ 비틀거리기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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