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관리업자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재선정을 앞두고 입주민 10분의 1 이상이 ‘공개입찰과 수의계약’ 중 공개입찰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음에도 아파트는 해당 설문에 ‘재계약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없다며 입주자대표회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 수의계약을 진행한다. 관할 지자체가 두 차례에 걸쳐 시정명령을 내리고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와 고발조치라는 경고를 하자 그제야 백기를 든 입대의와 관리주체. 이후 계속된 입주민들의 요구로 기존 관리업체를 배제하고 주택관리업자 선정 입찰을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에까지 처하게 된다. 위탁사는 사직을 원하는 관리소장을 만류하며 재계약을 위해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 단지를 잃고 관리소장 역시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종국에는 단지를 잃게 됐지만 지난 몇 년간 비난을 견디며 끝까지 의리를 지킨 관리소장에게 위탁사는 새로운 자리를 줄 수 있을까.

수도권의 A아파트는 500가구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단지다.
지난 5월 이 아파트 비상대책위원회는 위탁사가 관리소장을 바꿔주지 않는다며 그간의 경위를 적은 13페이지의 문서와 함께 취재 요청을 해왔다. 해당 문서에는 지난해 아파트가 장기수선계획에 없는 도장공사를 진행했고 이로 인해 과태료가 부과됐음에도 입주민에게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롯해 동대표 부정선거 의혹, 주택관리업자 재선정을 둘러싼 입주민 의견 무시, 관리소장을 교체해 주겠다던 위탁사 본부장의 협의 불이행 등의 내용이 실려 있었다.
비대위원장은 이 아파트는 관리소장만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 관리소장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입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현재 위탁사와 재계약을 체결하려 했고, 그가 지난해 장기수선계획 없이 진행된 도장공사에도 개입해 있다며 관리소장만 바꾸면 아파트가 정상화된다고 주장했다. 비대위원장의 말에 의하면 관리소장은 엄청난 수완을 가지고 아파트의 모든 사안을 획책하는 전략가로 여겨졌다. 그래서 관리소장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달 중순, 실제로 만난 관리소장은 기대와는 딴판의 인물이었다. 오히려 이 아파트의 주요 사안을 모두 위탁사에 보고하고 그에 따른 조언을 받아 실행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난해 도장공사를 앞두고 이 아파트를 떠나려 했다는 말을 들려줬다.
지난해 입대의가 장기수선계획에 없는 도장공사를 의결했을 때 관리소장은 위탁사에 이 사실을 알리고 직을 내려놓으려 했다고 한다. 장기수선계획에 없는 공사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위법행위다. 또 만에 하나 담합이나 결탁이 있다면 선정지침 위반을 뛰어넘는 범죄행위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관리소장은 입대의에 해당 공사가 부적절하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당시 입대의는 지난 2012년 수선계획을 통해 진행했어야 할 공사였다며 ‘안해도 과태료, 해도 과태료라면 아파트를 깨끗하게 하자’는 논리로 공사를 강행하려 했다고 한다.
관리소장은 위탁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이때 위탁사는 그에게 ‘재심의 요청’을 하라는 조언을 했다. 훗날 문제가 불거졌을 때 조금이라도 면책사유를 만들기 위한 방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관리소장은 재심의 요청을 하고 이를 회의록에 남긴다.
이후 입대의는 재의결을 통해 공사를 강행했다. 관리소장은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입대의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지자체는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고 이 과태료는 당시 입대의 회장이 전액 납부한 것으로 알려지며 일부 입주민들은 당시 입대의·관리주체와 공사업체 간의 담합을 의심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올해 초에도 관리소장은 동대표 선거 당시, 선관위와 마찰이 있어 직을 내려놓으려 했다고 말했다.
위탁사에 의하면 다른 단지에서 근무하는 관리소장 B씨(A아파트 입주민)와의 마찰도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관계자들은 B씨를 배후에서 움직이는 아파트의 실세라고 표현했다. 관리소장이 관리소장을 내쫓으려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확인을 위해 비대위원장을 통해 취재 요청을 했지만 B씨를 만날 수는 없었다.  
비대위원장은 B씨가 입대의 회의록 등을 검토하고 잘못된 사안을 지적해주긴 하지만 해당 아파트 관리에 크게 간섭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관리소장의 업무실수가 잦아 자신들이 도움을 구하고 있다고 대변했다.  
어찌됐든 부정선거 논란으로 관리소장이 사직을 결심했을 때도 위탁사는 곧 주택관리업자 선정 기간이 되니 조금만 더 자리를 지켜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후 기존 업체와 수의계약을 반대하는 입주민 서명이 접수됐을 때도 위탁사는 ‘관리사무소에 비치된 양식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수의계약을 진행해도 무방하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새로 뽑힌 입대의는 이를 따랐다가 지자체로부터 두 차례나 시정명령을 받게 됐다. 하지만 A아파트에서는 모든 결정의 주체가 관리소장이며 그의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아파트가 시정명령을 받은 것’이라는 분위기가 퍼져 있는 상태다. 
해당 단지를 찾은 날은 다른 위탁관리회사 사장과 소속회사 관리소장 두 명이 이곳을 찾아 관리소장을 회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택관리업자 선정 시 자신들에게 협조하면 다시 이곳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해준다며 오래도록 설득을 이어갔다. 요새 취업이 얼마나 힘드냐면서.
선약을 하고 간 기자는 약속 없이 찾아온 그들이 떠날 때까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기자인 줄 몰랐는지 그들은 거침없이 제안을 이어갔다.  
업체 사장이 소속 관리소장까지 동원해 청탁을 하는 모습은, 위탁사 간 경쟁을 왜 제로섬게임이라 부르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오랜 설득에도 관리소장은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저는 C회사 소속이고 저는 A아파트 관리소장입니다. 입찰서류를 수정해야 하니 돌아가주세요”라고 말했다.
이후 두 번째 만남에서도 끝내 관리소장은 소속 위탁사에 불리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 장시간의 인터뷰에도 그는 ‘이게 관리소장이라는 직업이니까요…’라고 할 뿐이었다.
아직도 일부 입주민들은 “위탁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 관리소장이 문제”라는 말을 한다. 근무기간 동안 관리소장은 다른 핑계를 대지 않았다. 스스로 비난을 견뎌냈다.
혹시 위탁사가 내정해준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변이 없다면 관리소장은 머지않아 단지를 떠나 직업을 잃게 될 것이다. 위탁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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