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임대아파트 사이에 세워진 콘크리트 벽 이야기


 


마주 본 두 임대아파트 사이에 콘크리트 벽이 세워졌다는 소식에 현장으로 향했다. 장소는 서울에 위치한 SH공사 임대아파트 A와 B. 현장에 도착하니 B아파트 진입로 좌측에 성인 남성 가슴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입구부터 죽 이어져 있었다. 회색의 벽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벽 너머 A아파트에는 텃밭이 조성돼 있었다.

▲ 130cm, 길이 51m 정도의 콘크리트 벽이 세워진 모습

 

벽은 왜 세워졌을까.
A아파트는 지난 3월 서울시와 자치구가 함께 진행한 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돼 텃밭 가꾸기에 들어간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A아파트와 B아파트는 인접해 있으나 A아파트의 지대가 B아파트보다 높게 형성돼 있어 잡초를 제거하고 흙을 갈아엎었을 때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불면 B아파트 쪽으로 토사가 유실될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A아파트는 SH공사 측에 ‘텃밭을 가꾸려 하니 토사 유실에 대한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
A아파트 임차인대표회의 회장은 “텃밭을 잘 가꾸고 싶지만 B아파트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4월 8일과 16일, 두 차례 요청을 받은 SH공사는 내부 회의에 들어간다. 장마철 토사가 B아파트 쪽으로 흐를 염려가 있으니 흙막이 공사를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어 일부는 콘크리트, 일부는 다른 재질로 쌓는 방안과 전체를 콘크리트로 세우는 방안이 논의됐고 상대적으로 비용이 낮은 콘크리트로 벽을 세우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4월 20일 단가보수업체에 작업을 지시한다. 그리고 5월 11일 기존 펜스를 철거하는 것으로 공사는 시작됐다.
B아파트 입주민에 따르면 기존 담장을 철거할 때만 해도 해당 공사가 무슨 공사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담장이 세워진 땅은 A아파트의 영역이었고 텃밭을 가꾸면서 주변 환경 정비를 함께 진행하는 줄 알았다고 말한 입주민도 있었다.
B아파트는 거푸집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부을 즈음 어떤 공사인지 알게 됐고 공사를 중지하라는 민원을 제기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5월 26일 콘크리트 벽이 세워졌다.
B아파트 입주민들은 콘크리트 벽이 세워진 곳은 A아파트의 영역이라는 걸 인정했다. 게다가 실상 B아파트까지도 모두 SH공사 소유의 땅인 것도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B아파트와 닿아 있는 곳이며 아파트의 얼굴인 출입구라면 공사 이전에 한번이라도 자신들의 의사를 물어봐야 하지 않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더욱이 공사 중에 공사를 중지시켜 달라고 수차례 맞섰지만 SH공사가 공사를 강행했다고 분개했다.
하지만 SH공사는 “공사 중 민원이 제기된 적은 없다”고 일축하며 “B아파트 입주민들은 지금처럼 콘크리트가 완전히 세워지고 나서야 반대하기 시작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지난 16일 회의 때만 해도 일정부분을 철거하고 투시형 펜스를 설치하는 안 등으로 합의점을 찾으려 했지만 17일 돌연 B아파트 측에서 원상복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며 난감해 했다.
현장을 직접 찾은 날도 양측 입주민들의 의견은 모아지지 않았다. 특히 B아파트는 아파트 관련 시민단체와 연대해 벽을 철거하고 원래 상태로 돌려놓으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한 관계자는 대략 높이 130㎝, 길이 51m의 콘크리트 벽의 공사비용이 1,800만원이라는 것에 대해 공사비가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공사가 너무 급하게 진행됐고 해당 주거복지센터가 공개경쟁입찰을 위한 공고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취재 결과 이번 공사는 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센터는 “긴급을 요하는 상황이라 판단해 단가보수업체에 공사 지시를 내렸다”며 “공사비 의혹은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말했다. 단 1,800만원이라는 공사금액은 업체 쪽에서 산출한 액수로 아직 지급되지 않았으며 검토를 통해 실제로는 이보다 적게 지급될 수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아무튼 A아파트와 B아파트 사이에 세워진 콘크리트 벽으로 인해 갈등은 SH공사와 B아파트를 넘어 A아파트 입주민과 B아파트 입주민 사이로 증폭되고 있다.
A아파트 입주민은 “B아파트의 주장은 애써 가꿔온 텃밭을 갈아엎으라는 소리와 같다”면서 “B아파트가 남의 단지 담장을 헐라고 요구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냐”며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른 입주민도 B아파트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견해를 보이며 아무 실익이 없는 원상복구를 원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SH공사도 원상복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일 현장에서 기자는 B아파트 입주민에게 원상복구는 아무런 실익도 없는데 왜 원상복구를 원하는지 물었다. 세금도 낭비되고 B아파트는 사실 벽과 토지에 대한 권리도 없지 않은가. 차라리 다른 조건으로 합의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 입주민은 SH공사가 매번 말을 바꿨다며 억울하다고 했다. 담에 수십 개의 배수구멍을 뚫어놨으면서 토사 유출이 염려돼 콘크리트 벽을 세웠다고 한 것도 모순(현재 배수구멍은 다시 막힌 상태)이고 자신들이 공사 도중에 반대하지 않고 다 끝나고 나서야 반대했다며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벽을 허물면 이 공사는 시민의 세금을 낭비한 꼴이 된다. 그렇다고 이 벽을 그대로 두자니 B아파트 입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더욱이 사안은 A아파트와 B아파트의 대립구도로 번지며 해결책은 요원해 보인다. SH공사의 대응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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