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여보 잘 다녀온다고 집한테 인사하고 가게.”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까지 12박 13일의 문학기행을 떠날 때   남편이 배웅하며 했던 말이다. 그래서 일까. 3일쯤 지나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내 새 아침이 오고 나는 어느새 화장하고 짐 싸고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일상인듯 적응하게 됐다.     
15인승 승합차로 이동하면서 그린필드를 원없이 보았다. 우스갯 소리로 한국의 건설업자들이 보면 아파트 짓고 싶어서 안달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행여 어디 아파트가 보이는가 찾는 나를 보며 놀랐다.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 왜 골프가 영국에서 생겨난 운동인 지 알 것 같다.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생가를 찾아보거나 작가박물관을 방문하며 그곳의 하늘을 보고 날씨를 체감하며 그들이 먹은 음식을 먹어가며 인연 지어진 작가의 사전 정보를 토대로 내적 대화를 나누면서 다녔다. 이동하는 동안에는 작가의 대표작을 영화화한 작품을 감상하거나 그 나라 민요를 듣기도 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깊어질 수밖에 없다.
머리로는 이 지구상에 없는 작가의 혼을 만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눈으로는  우리나라 기사를 읽으며 오염됐던 눈을 그린필드에 씻으며 다닌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양떼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먼저 다녀간 우리나라 여행객은 머리에 기생하는 이 같다고 했다니 누가 말리겠는가. 원경으로 펼져지는 풍경에 오버랩된 기억 안의 이미지 탓인 것을. 
초록의 들판에서 양과 소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박고 물만 먹고 있다. 문득 저들의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게 하면 어떤 변화를 보일까 궁금해졌다.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경관에는 고층빌딩이 보이지 않았다. 고풍스러운 돌집이 모여 골목길을 이루거나 드문드문 지어진 자연 속의 주택들을 보는 즐거움은 여행의 백미이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서 특별하게 만난 것은 바람이었다. 아일랜드의 더블린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우리는 의복을 두텁게 챙겨입고 모허 절벽을 만나기 위해 나섰다. 초입에 이르러 빗방울이 후두둑거리다가 이내 멎기를 반복하더니 바람이 분다. 내가 만나본 바람 중에 가장 강력한 바람이었다.
3억년 전에 생성됐다는 모허 절벽은 연이은 높은 계단을 확대해 세로로 세워 놓은 듯이 직각으로 꺾이며 이어지는데 무려 8㎞로 펼쳐지며 장관을 이룬다. 절벽의 높이는 200m 정도이다보니 내려다 보면 으스스해진다. 오르막길에서 비가 섞인 바람을 만났다. 나는 90도로 몸을 꺾고 앞으로 걷지만 내 몸이 날아갈 것처럼 바람은 거세다. 
바람이 불면 엎드려라. 바람과 맞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바람이 지나가도록 바람길을 만들고 침묵과 최대한 낮은 자세로 바람에 걸리지 않도록 하라. 바람은 까뒤집고 들춰내고 마구 섞어대는게 제 속성이므로 틈을 내주지 말아라. 항상 불 수 없으니 제 풀에 꺾이는 시간까지 기다려라. 해 나고 바람 자면 풀잎처럼 부시시 일어나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렇게 읊은 내 글이 모허 절벽에 가면 무용해진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서풍은 길을 찾지 못하고 그냥 절벽을 친다. 그 바람은 바닷물을 몰고 와서 절벽에 무섭게 던지고 달아난다. 어쩌겠는가. 절벽은 조금씩 제 살을 깎고 있을 것이다. 부딪친 물은 부서져 절벽 위로 오르고 객은 젖은 길을 바람의 눈물로 읽는다. 훗날 모허 절벽은 조금 뒤로 경계를 이룰 것이다. 
절벽 건너편에 우뚝 솟은 o’ Brien’s 돌 탑은 마치 모허 절벽의 분신인 듯 날마다 절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아파하는 절벽을 보는 아픔, 바람을 통째로 맞는 탑의 아픔, 관광객은 그들의 아픔을 보러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유일하게 한국 관광객이 적은 관광지이기도 하다.
꿈같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가이드가 지나가며 남긴 말이 떠오른다.
“한국 것은 감기약도 맛있어요.”
먼 나라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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