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이 대 성  수필가
충북 청주 신봉삼성아파트 입대의 회장

아파트 관리실에서 창밖을 바라다보면 각종 나무 사이로 모과나무 한 그루가 항상 필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언제부터 모과 열매가 열렸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몇 개 달리지 않은 작은 열매가 안쓰럽게 보인다.
지난해에는 많은 열매가 열렸던 터라 올해 몇 개 안 달린 열매를 바라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에 눈이 더 자주 간다. 가을이 짙어 가면 연초록빛의 열매가 점점 노랗게 익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적당히 강하고 달콤하며 상큼한 냄새를 선물할 텐데 올해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이러한 희망은 접어야 할 것 같다.
마을 앞의 커다란 저수지와 방죽도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며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농부들의 마음을 항상 편안하게 살찌웠던 저수지의 가득 찼던 맑은 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들판에 펼쳐진 논과 밭에는 모내기한 벼와 각종 곡물이 자라고 있지만, 비실비실 힘을 잃어가고 있다. 전답의 많은 식물에 물이 필요하지만 물은 간데없고 논과 저수지의 바닥은 지진이 지나간 듯 입을 쩍 벌리고, 밭고랑은 건조한 흙먼지를 날리며 애타게 비를 기다리고 있다.
극심한 가뭄이다. 강수량이 예년과 비교하면 절반밖에 안 되고 댐의 저수량이 십수 년 만에 최저인지라 발전도 곧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다.
텃밭에 심어놓은 방울토마토 잎과 이름 모를 꽃들은 오랜 시간 가뭄과 무더위와 싸우다 지쳤는지 시들시들하다 못해 말라죽기 일보 직전이다. 더군다나 열매까지 주렁주렁 맺혔지만 쓰러질 듯 힘들게 제 몸을 지탱하는 줄기를 보니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산천초목들이 말라버린 하늘을 바라보며 생명수인 단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비록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버티는 처절함이 느껴지고, 목숨을 이어주는 생명수가 언제나 공급될까 기다리며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는 모습이 묻어난다.
하지만 생각 없는 인간들은 어떠한가? 아무리 가물어도 먹고 샤워하는데 물을 물 쓰듯이 쓴다는 말 그대로 낭비가 여전하다. 물 한 방울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가뭄이 아무리 심해도 남의 일이고 관심도 없다. 농부들의 애처로운 땀방울이 눈물방울이 돼 떨어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때로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하며 살아남기 위해 이처럼 처절하게 인내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얼마나 기다려 봤는가. 그동안 힘들고 희망이 안 보인다고 너무 쉽게 나의 꿈을 포기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던가. 잠깐 피었다 지는 이름 모를 꽃들도 가뭄을 이겨내며 꽃이 지는 그날까지 방실대며 웃는데, 수십 년을 사는 우리는 인생의 꽃밭에서 얼마나 많은 날을 환하게 웃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은 비가 올 듯하면서도 비는 오지 않고 잔뜩 찌푸린 날씨가 나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한다. 필자는 원래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왠지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지는데 오늘은 그 느낌이 더하다. 하지만 시원한 생명수가 땅의 생명력을 더 강하게 하고, 농부들의 애타는 어두운 마음을 활짝 피게만 해준다면 얼마든지 비가 내려도 좋다. 추적추적 가냘프고 슬프게 내려도 좋고, 장대비가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줄기차게 내려도 좋다.
시원한 생명수가 간절한 이때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하늘은 오늘도 비를 내리지 않는다.
‘너무 목말라 죽어가던 우리의 산하, 부스럼 난 논바닥에 부활의 아침처럼 오늘은 하얀 비가 내리네.’
이해인의 시 ‘비 오는 날의 일기’처럼 메말라 죽어가는 대지에 생명의 부활을 알리는 하얀 비가 촉촉이 내려주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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