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지난 한 해 ‘세월호 침몰’로 노란리본 달고 ‘희망고문’에 시달렸던 국민들이 이번에는 ‘메르스 확산’으로 마스크 쓴 채 ‘패닉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2003년 중국발 ‘사스’가 유행할 당시 단 한 명의 확진환자도 내지 않아 세계보건기구로부터 ‘사스예방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 나라인데 어쩌다가 ‘메르스 민폐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된 것일까. 우선 방역당국의 초도 대응 실패, 정부의 뒷북 행정, 관료적 타성 등의 이유를 꼽을 수 있지만 그러나 또 다른 이유는 건조하고 온화한 기후조건, 가족 등의 간병·문병문화, 그리고 상급병원에서 1차 진료까지 맡고 있는 열악한 의료제도 및 환경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당국의 정보 독점에 따른 비밀주의에 맞서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를 가득 채운 괴담과 루머, 조롱과 불신이 메르스 사태를 더욱 증폭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소셜 미디어의 정보 확산 능력은 루머와 결합되면 허위 정보를 순식간에 확산시키는 ‘인포데믹스’ 현상을 발생시키게 된다. 게다가 해외에서까지 수칙을 어기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망신을 자초한 안전불감증과 낮은 시민의식, 그리고 검진 중에 난동을 부리며 멋대로 이동하는 볼썽사나운 추태도 빼놓을 수 없다.
메르스 등 전염병 전문가인 ‘그레고리 그레이’ 미국 듀크대 의대 교수는 “전염에 대해서는 보건시설의 통제시스템 강화가 중요하다”며 “전염 확산 차단을 위해 보건 통제 체계를 강화하면서 공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밖에도 해외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노출자 격리가 최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득 국제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자신의 저서 ‘강한 국가의 조건’에서 강한 국가와 작은 정부가 양립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가 말한 강한 국가란 국가가 이것저것 개입하기 위해 정부 기능을 분별없이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핵심적인 기능 즉 국가안보,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사회질서 유지만큼은 강력한 권위를 동원해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든 국가의 권능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고 이익집단, 지역, 계층 간의 갈등에 대해서 국가가 조정하면 그대로 수용하도록 권위를 갖는 것이 강한 국가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세월호 대책, 연금개혁, 무상복지 등 국가적 과제에 대한 갈등이 증폭되고 각종 시위로 시민생활이 침해를 당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조정하는 국가의 역량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작금의 이 엄중한 비상시국에도 총괄 컨트롤 타워는 보이질 않는다. 현재 정부의 메르스 관련기구는 복지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와 국민안전처 장관이 본부장인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그리고 청와대의 ‘민간합동대책반’이 있다.
그런데 직제도 복잡하거니와 업무기능과 권한이 중복되는 것도 많아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러니 격리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통제는 잘 이뤄지지 않아 이탈자 신고만도 2,000건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후쿠야마의 좌표로 평가하자면 우리나라의 ‘국가기능’은 예전보다 더 확대된 반면 ‘국가의 역량’은 훨씬 더 약화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가장 절박한 과제는 ‘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다. 기본으로 돌아가 국가의 법과 제도를 재점검해 핵심적인 국가 기능을 철저히 확립하면서 국가의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 국민들도 소셜 미디어에서의 근거 없는 괴담이나 확대 재생산되는 악성 유언비어 등을 무분별하게 퍼나르는 행태를 지양하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가뜩이나 중심을 못 잡고 허둥대는 보건 당국에 루머와의 전쟁까지 안겨서야 되겠는가. 기왕지사 ‘방역 무능 국가’로 만방에 들통이 난 마당에 ‘그 정부에 그 국민’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동방예의지국’의 후예답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며 살자. ‘예(禮)’란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과 같은 단순한 예절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나 아닌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진정한 예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 내는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참에 정부와 국민 모두는 이환위리(以患爲利)의 다부진 각오로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메르스 바이러스를 완전 박멸해 한껏 실추된 국제적 명예를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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