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예전에는 아파트 ‘관리소장님’하면 연세 지긋한 초로(初老)의 할아버지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승강기 있는 고층 아파트가 흔치도 않았거니와 특별히 신경써서 관리해야 할 복잡한 기계설비들이 없었으므로 전기와 수도배관에 대한 상식 정도만 갖추고 있으면 누구나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때는 퇴역장교를 위한 자리가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초창기 현대사를 지배했던 군부정권이 위관급과 영관급을 마지막으로 퇴역하는 장교들에게 밥벌이라도 알선해 주기 위해 마련한 방편이 각 지역 및 직장의 예비군 중대장과 아파트 관리소장 자리였다. 그래서 군대식 위계질서가 몸에 밴 소장과 관리직원들의 불협화음이 들리기도 했고, 입주민들이 그런 소장들에게 반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관리소장이란 직책이 1990년대 초반 주택관리사제도가 시행되면서 확 바뀌었다. 1990년 제1회 시험을 시작으로 주택관리사들이 배출되고 이들이 속속 관리소장으로 배치되면서 공동주택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관리’라는 개념이 도입되는 단초가 됐다. 소장의 자리는 이제 단순한 ‘직책’개념을 떠나 어엿한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또 공동주택 관리 비리를 예방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리가 발각되면 개인의 명예가 실추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자격증 취소까지 당하는 날에는 당장의 생계수단을 잃는 것이기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 후 IMF와 외환위기를 겪으며 더욱 주목받은 이 자격증에 응시자들이 대거 몰리고 합격자 역시 양산되면서 주택관리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자격증을 따도 취업할 곳이 없는 기현상이 빚어져 왔다. ‘자격증 인플레이션’일 뿐만 아니라 시험준비를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과 돈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사회적 낭비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주택관리사보 선발예정 인원제’를 포함한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1면 기사 참조) 주택관리사제도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다. 제도 도입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본지가 늘 주장해 왔듯 시장수요를 훨씬 웃도는 유자격자의 양산은 자격자 본인과 관리현장 그리고 입주민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게 된다. 이전투구의 혼란 속에서 엄정하고 깨끗한 관리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가 열리길 기대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적정선의 제어를 통한 효율적 경쟁이 모두에게 득이 되는 길이다. 수험생들에게는 결코 즐거운 소식이 될 수 없겠지만 법 통과 후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유예기간이 예고돼 있는 만큼 더욱 정진해 원하는 결과를 얻길 바란다.
이와 함께 눈에 띄는 뉴스가 또 하나 나왔다. 국토부가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에 대한 전부 개정안을 행정예고한 것이다.(1면 기사 참조)
이상적 제도의 실용화에 대한 국토부의 고심이 느껴진다. 우선 ‘주택관리업자에 대한 입주자 등의 만족도 평가’를 폐지했다. 실효성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제도라고 해도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과단성’이 돋보인다. 이외에도 중소업체의 시장진입 장벽을 낮추고 수의계약 가능금액을 현실화했으며 민간 전자입찰시스템 사업자 지정기준을 새롭게 마련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현생인류의 조상이다.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여럿이 모이면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관리제도가 진화하고 있다. 모두 적자생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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