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리사무소장이다 47

 

유 벽 희  주택관리사

1990년 공사의 설비감독을 위해 입사해 두개 동의 건물 중 일단 별관을 먼저 오픈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고, 운영을 하면서 본관의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으나 영업파트와 총무파트의 인원들은 뽑았지만 시설파트에 대해서는 직영관리를 할 것인지 아웃소싱을 할 것인지도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로 개관을 하게 됐고, 결국 보일러를 가동할 줄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 한 달 가까이 혼자서 보일러 가동하고 민원을 처리하면서 생활했다.
잠을 설치며 혼자 근무하면서도 다행히 별다른 문제없이 지나갔고 그때의 근무태도를 인정받아 시설관리 책임자로 첫 발을 떼었다. 당시 맞벌이를 하느라 숙소에서 혼자 생활했었는데 약 3년 정도를 근무하다가 아이들도 어리고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져 사직을 하고 아내와 함께 자영업을 시작했다.
힘들고 풍족하지는 않아도 가족과 함께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던 생활이 이어졌으나 어느 때부터 갑자기 매출이 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업종변환을 고려하며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던 차에 콘도에서 뜻밖의 연락이 왔다.
다시 근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자영업은 아내에게 정리를 맡기고 일단 혼자 숙소생활을 하며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그해가 IMF의 환란을 겪던 1997년이었다.
IMF를 혹독하게 겪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찬바람이 불자 급여가 밀리기 시작하고 직원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다. 겨울이 오자 믿고 있던 관리부장도 그만두고 나갔다.
이때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인사조치가 단행됐다. 시설관리파트에서 일하는 나를 관리부 차장으로 승진을 시켜 살림을 맡긴 것이다. 참, 암담했다.
직원들 급여는 자꾸 밀려가고 영업 매출은 급속도로 떨어지며 거래처에서 대금 결재독촉에, 시와 세무서의 세금체납 독촉까지, 말이 관리부 차장이지 그야말로 그냥 총알받이였던 것이다. 마침내 지배인까지 그만두고 나가버렸다.
IMF가 시작되고 불과 3개월 사이에 거의 절반의 직원들이 사직을 하고, 나간 직원들은 노동부에 체불임금에 대한 진정을 넣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앞에서는 인격이나 의리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다는 것을 이때 정말 뼈저리게 몸으로 체험했다.
그동안 어려운 일을 많이 하고 사람들에 대해서 실망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이때만큼 사람들이 야속하고 절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도 여기서 그만두고 나가야 할 것인가? 정말 매일 매일이 갈등의 연속이었다. 무언가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아직 젊으니 나가면 설마 가족을 굶기기야 하겠나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오기도 생겼다. 남들처럼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보일러 운전밖에 할 줄 모르던 내게 비록 껍데기만 남았을지언정 회사 살림살이를 맡기지 않았는가, 몇 달 논다고 당장 굶어 죽기야 하겠나? 최선을 다해 해보고 정말 안 되면 그때 그만둬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마음먹은 다음날 본사에 올라가서 회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면담을 하고 거기서 얻은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에 의지해서 밤을 새워가면서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일을 진행해 나갔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거나 급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우선순위와 기준을 정해놓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기준을 벗어나는 일은 일이 터지면 응급조치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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