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불국사
불국사하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또 한 번쯤은 가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 불국사에 대해 물어보면 상세히 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원인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설명할 때면 무조건 찬란한 문화유산임을 자랑하는 것에 너무 치중한 것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불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화려하고 장엄한 부처님의 세계를 땅 위에 옮겨 세우려면 국민들의 합심과 그것을 뒷받침해줄 만한 경제력, 곧 국력이 있어야 한다. 삼국이 통일돼 나라가 안정되고 모든 문화가 골고루 발달하던 시기에 불국사는 만들어졌다.
‘삼국유사’에는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불국사고금창기’에 의하면 불국사는 법흥왕 15년(528)에 지어졌고, 문무왕 10년(670)에 지은 무설전에서 의상의 제자인 표훈이 머물렀다고 하는 등 불국사 창건에 관해 ‘삼국유사’와는 다른 기록을 보이지만 이는 믿을 만한 연대가 못된다. 다만 총 2,000여 칸에 이르는 6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로 이뤄졌다는 기록으로 봐 불국사의 규모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수됐으며 임진왜란 때 크게 불타 석축만 남게 됐다. 창건 후 650여 년간 뭇 사람들에게 참된 부처님, 참된 아름다움의 세계로 기억되던 불국사는 그 뒤로 여러 차례 다시 세워지곤 했다. 그러나 이미 전쟁으로 국력이 기운 뒤였고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도 퇴락의 길을 걷고 있던 까닭에 신라의 정신을 되살릴 길이 없었을 터이다.
불국사는 높은 축대 위에 평지를 조성하고 여기에 전각들을 세운 대표적 가람이다. 현재의 경내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뉘는데 대웅전과 극락전이 각각 중심 건물이 된다. 극락전 뒤쪽은 복원되지 않았으나 법화전 터로 알려진 건물 터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창건 당시의 불국사와 현재의 불국사 규모에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현재 낱낱의 영역은 영역에 이르기 위한 계단,  문, 중심건물, 영역을 둘러싼 회랑 등의 네 가지 기본 요소로 이뤄진다. 불교적 해석을 빌면 각 영역이 하나의 이상적인 피안세계인 불국을 형상화한 것으로 대웅전 영역은 석가여래의 피안세계를, 극락전 영역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비로전 영역은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김대성에 관한 전설
김대성은 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해 성과 같이 생겼다고 해 이름을 대성(大城)이라 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는 너무나 가난해 마을의 부자 복안 밑에서 머슴살이를 했는데 열심히 일한 그는 초가삼간과 밭을 조금 마련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점개라는 스님이 복안에게 흥륜사 법회에 시주하길 권하자 복안이 배 50필을 바쳤다. 점개는 신도가 보시하면 천신이 항상 보호해 하나를 보시하면 배를 얻게 되고 안락과 장수를 누리게 될 것이라 축원했다. 이 말을 들은 대성이 어머니께 말씀드리길 “우리가 과거에 좋은 일들을 해놓은 것이 없어 이 같이 곤궁하니 지금 보시를 하지 않으면 내세에 더 가난해질 것입니다”해 밭을 흥륜사 법회에 보시하기로 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성이 죽었다. 대성이 죽은 그날 밤 제상 김문량의 집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모량리의 대성이라는 아이가 너의 집에 환생하리라”하는 소리가 지붕에서 들려왔다. 그리곤 김문량의 아내가 임신해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왼손을 꼭 쥐고 펴지 않다가 7일 만에야 폈다. 그 손바닥 안에 ‘대성’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쇠붙이가 있었다. 따라서 아이 이름을 그대로 대성이라 하고 모량리에 사는 전생의 가난한 어머니도 김문량의 집에 모셔와 편히 살게 했다. 부잣집 아들로 다시 태어난 대성이 장성해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 곰을 잡았다.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해 원망하며 말하는데 “네가 나를 죽였더냐?”하며 으르렁댔다. 두려움에 대성이 용서를 빌자 그 곰은 자신을 위해 절을 하나 지어달라고 했다. 잠에서 깬 대성은 크게 반성하고 이후 사냥을 그만두고 곰을 잡았던 자리에 장수사를 지었다. 이 일로 인해 사람으로 살면서 영(靈)에 등한했음을 깨달은 대성은 김문량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세우고, 모량리의 옛 어머니를 위해서는 석불사 곧 석굴암을 세웠다고 한다.

이 기록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믿기 어려우나 불국사가 창건된 것은 35대 경덕왕 때의 일로 김대성이 어느 정도 이 불사에 참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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