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박 응 구  기술위원장
한국엘리베이터협회

갑자기 멈추고, 솟구치고, 역주행하는 승강기로 인해 이용자는 불안하다.
대한민국은 승강기 밀도가 높은 나라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등을 포함해 53만대가 넘는다. 우리나라 전체 승강기 운행대수로는 세계 9위고 지난해 신규 설치대수는 약 3만6,000대로 중국, 인도 다음으로 많다. 인구 100명당 1대 정도 승강기를 보유한 셈이다. 시장규모도 승강기 제조와 설치, 유지보수 등을 포함해 약 3조원에 달한다. 88올림픽을 전후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대단위 아파트와 고층건물을 축조하기 시작했고 승강기 설치도 동반 상승했다.
그러나 90년대 IMF 이후로 승강기 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당시 승강기를 만들던 대기업들은 주력분야를 살리거나 접기 위해 짭짤했던 승강기 사업 분야를 다국적 기업들에게 팔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오티스(미국)와 티센크루프(독일), 미쓰비시(일본), 쉰들러(스위스), 코네(핀란드) 등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은 LG산전과 동양엘리베이터, 중앙엘리베이터 등 알짜배기 국내 승강기 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손쉽게 시장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 국내 시장에서 강자로 떠오른 다국적 기업들은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부품생산 거점을 옮기고 기술 인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경남 창원 L사의 승강기 공장이 문을 닫았고 수백 개의 외주업체들도 볼링 핀처럼 쓰러졌다. 수십 년 동안 정든 회사에서 정리해고된 직원들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 관련분야 부품이나 보수회사를 차렸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300개 정도에 불과했던 승강기 기업들은 1,000개로 불어났다. 한정된 시장에서 기업들만 늘다 보니 과잉경쟁으로 승강기 보수료는 점점 떨어져 최근에는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든 상태로 전락했다.
이후 한국의 승강기 시장을 집어삼킨 해외기업은 어떤 모습일까? 대표적인 오티스, 티센크루프, 미쓰비시, 쉰들러 등은 중국 등지에 현지공장을 설립하고 대부분의 부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형태로 기업 경영체질을 바꿨다. 그런데 수십 개에 이르는 주요부품을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등 이곳저곳에서 들여오다 보니 충분한 운행 테스트도 거치지 못한 채 그대로 설치되고 있어 문제다. 다국적 기업들 대부분이 국내의 아파트나 건축물 환경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적용하고 있는 자체기준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시공사는 발주처로부터 계속되는 준공압력 때문에 승강기 설치를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건물 준공 이후 발생하는 잦은 고장과 사고, 안전상 심각한 문제로 인해 법적 다툼까지 가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승강기는 자동차나 배처럼 공장에서 완제품이 출고되는 기계장치가 아니다. 수천 개의 부품들을 건물 승강로에 설치하기 때문에 공장에서 부품 출하 전에 반드시 조립해 보고 품질점검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각각의 부품 공장에서 직접 현장으로 부품이 발송되는 등 품질 검사가 완벽히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승객이 이용해 사고가 발생해야 그 문제가 밝혀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잦은 고장은 기업들의 부품공급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처럼 검증 절차 없이 중국 또는 동남아에서 들여온 부품들을 공사기간에 쪼들려 건물에 그대로 설치하는 방식이 계속된다면 고장은 증가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건물주와 이용자가 떠안아야 한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승강기를 설계할 때부터 조립하고 설치하는 전 과정을 꼼꼼히 살피고 지적할 수 있는 승강기 컨설팅이나 감리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 대부분이 이를 회피하고 있다. 고객에게 불편한 진실이 공개돼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승강기는 지극히 전문적인 영역이다. 따라서 건물주는 승강기를 설치함에 있어 해당 시공사에게만 전적으로 맡겨 놓기 보다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시각을 가진 승강기 전문가를 통해 컨설팅이나 감리를 받아 볼 것을 제안한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공사비를 적정수준으로 재평가할 수 있고 잦은 고장으로 인한 각종 피해, 스트레스, 사고불안감 등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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