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대한민국이 늙고 있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긴지는 꽤 됐고 최빈사망연령은 90세에 육박한다.
은퇴 후에도 수십년을 더 살아야 하고 그만큼 벌어놓은 돈이 없는 노인들은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능력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은 밖에 내놓은 폐지와 빈 병을 찾아 새벽부터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남이 먼저 집어갈 새라 온 종일 돌아다니며 모은 폐지는 노인의 키를 넘을 정도지만 고물상에 팔아 받는 돈은 불과 몇 천원 수준이다. 동네마다 거리마다 흔히 접하는 그들의 숫자는 통계로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다.
은퇴한 노인들에게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로 손꼽히는 직종 중의 하나가 남자에게는 경비원, 여자에게는 미화원이다. 장시간 근무에 홀대받는 직종이지만 그래도 노인의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경비 청소 용역업체에서 구인광고를 내면 수십명의 지원자가 몰려드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금 ‘경비원 수난시대’의 광풍을 맞고 있다.
지난 연말 입주민의 모욕을 견디다 못한 경비원 분신사건 이후 대대적인 사회적 반성과 자각의 물결이 이는가 싶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지난 13일 새벽. 아침을 거른 경비원 민 모씨가 경비실에서 김밥을 먹던 중 입주민으로부터 인분세례를 받았다. 검은 비닐봉지에 인분을 받아 온 입주민이 민씨의 얼굴에 비벼대면서 입 안으로까지 밀려들어갔다. 입주민은 30여분 뒤 경비실에 다시 나타나 또 인분을 던지며 “막걸리 X맛이 어떠냐, 다음에는 칼이다. 그 전에 나가라”고 했다. 이유는 “실내흡연이 이웃에게 피해를 준다”는 며칠 전 방송내용 때문이었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주차스티커 부착문제로 시비가 붙은 입주민에게 폭행당한 경비원이 뇌출혈로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외에도 표면화되지 않은 사건들까지 감안하면 경비원들의 수난이 도를 넘어 계속되고 있다.
늙은 한국의 음울한 초상화는 통계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얼마 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49.6%로 OECD 평균(12.6%)을 훨씬 초과해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게 나온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17세 이하와 18~25세, 25세~65세 연령대 모두에서 상대적 빈곤율이 OECD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지만 전체적인 빈부격차는 회원국 평균을 훌쩍 뛰어 넘었다.
대한민국 부유층 상위 10%의 소득이 빈곤층 하위 10%의 소득보다 1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빈자가 100만원 벌 때, 부자는 1,000만원 이상을 벌어들인다는 얘기다.
이처럼 사회적 빈부격차가 극대화되는 마당에 노인의 빈곤율이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건 대한민국의 경제와 사회가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지표로 봐야 한다. 비상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건만 우리는 아직도 병들어가는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 혼자 사는 홀몸노인이 25만명을 넘어섰다. 2030년이면 이 숫자가 두 배로 늘 전망이다. 통계청 사회조사에서도 60세 이상 노인 가운데 54.8%가 자녀와 떨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며칠 전 한 가정에 불이 났다. 가장 먼저 뛰쳐나온 30대의 품에 개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집안에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불 속에 갇혀 있었다. 두번째로 나온 어머니의 품에도 강아지가 있었다. 스스로 탈출하지 못한 90대 할머니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구조됐다. 그리고 경찰은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가 마지막 남은 개 한 마리를 마저 구해냈다. 막장드라마도 아니고 블랙코미디도 아니다. 틀림없는 현실인데 현실이 더 심하다.
얼마 전 한 방송에는 입원한 노인들에게 수면제를 먹여 종일 잠만 재우는 요양병원의 실태가 보도됐다.
늙기 전에 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늙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시대의 대한민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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