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감천의 벽화마을은 소통의 일번지다.
미로 미로를 향한 골목투어는 어느 쪽 어느 방향으로 가나 막다른 골목이 없다. 우리의 정치도 경제도 감천을 닮아 소통으로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보는 눈이 다 달라서 그림이 아름답고, 듣는 귀가 다 달라서 음악이 아름답지만 다름이 만들어내는 끝은 결국 사랑이요 소통이요 감동이 아닌가. 감천에는 어린왕자와 사막의 여우도 있다.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일이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라고 한 말이 어린왕자에 있었지. 이름을 밝히지 않고도 마음껏 낙서를 할 수 있는 낙서 갤러리도 있다. 바람이 자고 가는 바람의 집도 있고, 하늘도 쉴 수 있는 하늘마루도 있다.
마을공동체가 운영하는 ‘감내 맛집’에서 감내 비빔밥을 먹어도 좋고 감내 분식을 먹어도 좋다. 나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주로 매운 국물에 쫄깃한 면발이 살아 숨 쉬는 짬뽕이 당긴다. 쫄깃한 긴 면발은 그 자체가 질긴 인연인 우리네의 골목길이다.
내친김에 영도의 흰여울 마을도 좋다기에 영도로 간다. ‘변호인’이라는 영화촬영지이기도 하단다. ‘범죄와의 전쟁’, ‘영도다리를 건너다’의 영화 촬영지이기도 하지만 변호인 때문에 유명해졌으며 제2의 감천마을을 꿈꾼단다. 벽에 적힌 변호인의 대사가 부산 사투리인가 보다.
“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님아 니 내 쫌 도와 도”
빨랫줄에 걸린 옷들이 유치환의 깃발로 펄럭인다.
지금 외롭고, 아프고, 부족하고, 억울하고, 초라하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은 자갈치골목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아픔 하나쯤, 번뇌 하나쯤, 사랑 하나쯤, 품고 사는 골목길을 말이다.
삶이 힘들고 지겹다 싶으면 생명이 펄떡이는 어시장의 활어 골목도 좋다. 얼음 위에 또 얼음이 얼어붙어 겹겹의 주름살로 빛나는 너테는 지난 엄동을 나는 생존의 지혜가 아니었던가.
인간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불후의 명곡만은 아닐 것이다. 제각각 자기의 목소리로 자기 물건을 사가라고 외치는 생존의 경계선에서 갈치는 눈이 작은 게 맛있다는 것도 골목길의 노점상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하는 새들만 지저귀면 숲은 너무도 적막할 것이라고 한 시인도 있다. 너의 소리 나의 소리가 합쳐져야 하모니가 된다. 가야금 열두 줄이 어울리지 않고 가야금병창이 될 수 있을까, 가야금 산조가 될 수 있을까.
풍류남아 ‘임제’와 재색을 겸비한 명기 ‘한우’와의 로맨스도 엉키고 포개지는 열두 줄 가야금 선율이어라. 골목길은 임제의 ‘한우가’다.
날이 저물어도 시장에 간 엄마의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들리지 않은 골목길은 기형도의 ‘엄마 걱정’이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의 엄마걱정을 흥얼거리며 천재들은 왜 하늘이 일찍 데려가는지 그의 시 ‘빈집’처럼  29세로 생을 마감한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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